올해 패치워크에서는 '도시실험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도시실험가들을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플레이워크'라는 영역을 만들어가는 '팝업플레이 서울'의 오은비 대표님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팝업플레이'라는 실험적인 놀이판을 열며 어린이가 주체로 존중받는 '놀이 가능한 도시문화'를 제안하고 있는 과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시실험가들은 결국 더 나은 환경을 꿈꾸며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오은비 대표님의 영감이 되는 말들을 이곳에 생생하게 옮겨 봅니다.
어린이의 놀이 환경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사람,
플레이워커
저는 '플레이워커'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요. 혹시 들어보셨나요? 처음 들으면 '놀이를 일로 하는 사람?' 이런 느낌이잖아요. 놀이를 노동으로 한다고? 그럴 수 있어? 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제가 놀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놀이의 전문가는 어린이라고 생각해요. 플레이워커는 어린이들의 놀이 환경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장 활동에서부터 정책 개발까지 가는 그 여정에 있는 사람이에요.
플레이워커라는 사람은 어린이가 스스로 놀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지역 안에는 사람도 있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유형의 자원들이 있잖아요. 그런 유무형의 자원들을 엮어가면서 커뮤니티 안에서 놀이판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게는 놀이 환경을 만들고, 크게는 도시적인 관점에서 정책들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캠페인을 하기도 해요. 어린이의 필요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게 되죠. 어린이가 교도소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교도소에 수감된 부모를 만나러 가야하는 경우요. 얼마나 스트레스 강도가 높겠어요. 그럴 때 어린이와 함께 하며 어린이가 조금 더 건강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일도 하고요. 홍콩 같은 경우는 각 병원에서 플레이워커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의 필요에 따라 플레이워커들이 역량 개발도 하고 협업도 하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요. 대부분 ‘놀이’의 본질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어떻게 놀이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어린이를 대할 때는 자꾸 '나'를 투영시키고 어린이는 또 나에게 투영이 되거든요. 이것을 '전이 과정'이라고 해요. 내가 어릴 적에 놀았던 방식, 또는 나의 결핍들이 나의 경험이 되어 놀이 현장에서 펼쳐집니다. 어린이들과 무언가를 할 때 나도 모르게 그런 요소들을 넣게 되는 거예요. 저라는 사람은 학원가가 즐비한 사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3학년 이후로 즐겁게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흙을 뒤집어쓰면서 놀아본 경험이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보호자가 어린이를 키운다고 생각해보면 흙을 뒤집어쓰게 할 수 있을까요? 플레이워커는 이런 문화적 장벽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장벽들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허용 정도를 높여주는 일, 어린이의 대변인으로서 현장에 존재한다고 보시면 돼요.
스스로 놀이하고 성장하는 환경에
필요한 요소들
저는 2015년부터 '팝업플레이서울'을 운영하고 있고요. 원래는 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과학기술기획자였어요. 너무 상반되죠.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3년 정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했던 게 업이 된지 이제 11년 정도가 되었어요. '어떻게 어린이를 자신이 사는 지역을 바꿀 수 있는 주체로서 인정할 것인가', ‘어떠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워크'는 놀이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에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체험 활동이 많이 운영되는데요. '체험'은 의도 자체가 어른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놀이 환경을 조성할 때는 어린이의 의도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적과 의도 자체가 누구에서부터 시작했는가에 따라 '놀이'가 될 수도 있고 '활동'이 될 수도 있어요. 어린이에게서 일어난 것이라면 '놀이', 어른의 생각에서 시작해서 발단됐으면 '활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활동이라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 활동 안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활용의 정도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어요.
놀이 환경을 조성하려면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요. 하나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놀이가 가능한 공간이어야 하죠. 도시 안에 많은 공간이 있지만 놀이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놀이가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시간을 확보해야 해요. 충분하게 놀 시간이요. 30분이 아니라 2시간 정도는 어린이들에게 확보를 해 주는 게 필요해요.
다음은 도구입니다. 저희는 이걸 ‘루즈 파트’라고 불러요,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도구들이 풍부한 환경을 더 좋아하지만 사실 어린이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에요. '참여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보여주기식 참여 디자인이 많아요. 이것을 진정으로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공, 진심이 들어가야 하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더 많은 시간이 들어요. 그렇다보니 저희가 지역과 협업을 할 때 어려운 점이 상당히 많아요. 사실은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거든요. 하지만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것, 형태에 많이 집중해요.
그리고 마지막이 허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에요. 도시에서 어떻게 어린이에게 허용을 높일 수 있을까,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허용 범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는 일을 저희가 합니다. 저희는 어른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제가 그 환경에 존재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어린이들은 오히려 더 재미있게 잘 놀거예요. 욕도 엄청나게 하겠죠. 그런데 어른이 껴 있다면 어떨까요? 어린이가 욕을 한다거나 분쟁 상황이 발생하면 그걸 해결해주기도 하고 훈육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하지 않고 투명 망토를 입는 사람처럼 존재합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는 건 환경을 만든다는 건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 안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수정할 수 있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가 직접 자유롭게
만들고 노는 놀이터 문화

여러분에게 최초의 ‘모험 놀이터’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여기서 플레이워커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 말은, 관찰자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보통 우리는 어린이들의 놀이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어요. 힘이 가장 센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가운데로 들어가 있다는 건 '이 놀이판을 가이드하겠다'라는 의미가 돼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플레이 프레임'(놀이의 틀)이 어디까지인지를 관찰하고, 그 틀의 가장자리에 서 있거나 영향력을 많이 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개입의 법칙'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최초의 모험 놀이터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덴마크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놀이터였어요. '이걸 어떻게 해?' 싶지만 모두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것입니다. 저는 어린이의 위대함을 현장에서 많이 보아서, '이 정도는 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만큼 만들어낼 시간과 허용을 이 사회에서 주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어른의 시선에서 그들을 '작은 어른'으로서만 초대하고 있지 않나? 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영국의 '알렌'이라는 조경가가 덴마크의 최초의 모험 놀이터를 보고 너무 놀란 거예요.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간 뒤로 어린이의 놀이 환경을 조성하고 계속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관리자로서 역할을 했지만 점점 어린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 운영해 나가기 시작했죠. 최초의 모험 놀이터 플레이 워커이자 디렉터였던 존 베르틀슨이라는 사람은 '어린이에게 내가 가르칠 것은 없다. 나는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이런 태도가 플레이워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가와는 조금 다르지요.
일본에도 ‘플레이 파크’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일본의 어른들이 들고 일어난 결과입니다.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살 문제, 히키코모리 문제가 너무 심했대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생 문제를 그들은 30년 전에 겪었고요. 일본에서 플레이 파크를 만들게 된 건 1990년도부터인데요. 조경가이자 도시계획가였던 오무라 겐이치라고 하는 사람이 최초로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것이 ‘하네기 플레이 파크’라는 것입니다.
사진 | Blaine Brownell
일본의 플레이 파크는 380여개가 있고, 도쿄 내에만 100개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는 하나도 없죠.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너무 놀랐어요. 플레이 파크의 갯수도 그렇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놀라웠죠. 절망하기도 했어요. '나 혼자서 이렇게 활동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곳의 역사를 보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기도 했어요. '이제 그만해야겠다'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두 번, 세 번 가면서 일본과 한국은 완전히 다른 토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이 일본과 똑같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40여년 전에 시작한 일이고, 지금과 같이 민주주의를 겪어내고 인공지능시대가 된 지금의 한국은 또 다른 모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험 놀이터 협회’의 원칙을 몇 가지 소개할게요. 하나는 ‘자연 재료로 손수 만들 것’. 주민들이 다 같이 놀이 물품을 제작해요. 기성 제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민이 운영할 것’.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 그래서 플레이 워커들이 그곳에 상주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 직접 가보고 느낀 건, '내가 이 공간에 얼마나 손때를 묻혔는가'에 따라 오너십(Ownership)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곳에 대한 소유감을 느끼죠. 반면 한국의 문제는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이렇게 함께 할 여유가 없고, 이런 곳의 종사자가 되고 싶어도 기본 소득이 충분치 않죠. 그래서 우리 주변의 이런 시스템들이 잘 구축된다면 플레이 파크와 같은 장도 조금은 편안하게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도 나름의 부침을 겪고 45년 동안 시민들이 많이 노력해서 일궈낸 결과라고 보시면 됩니다.
날이 좋은 주말이나 봄에는 하네기 플레이파크에 약300명 정도가 모여요. 어린이들이 톱도 쓰고 망치도 사용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약 20년 넘게 이곳에서 봉사해 온 할아버지도 계신 것 같아요. 본인의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오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난 사람이 현재 65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3대가 여기에서 다 놀고 있다고 보면 돼요. 청소년들이 책가방 메고 와서 노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폭력적인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놀이는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냥 사회예요.

어린이의 꿈 공원 '유메 파크'(Yume park)라는 곳은 1만 평 정도되는 아주 큰 곳이고 대안학교도 같이 있습니다. 원래 가와사키에는 공장이 많았고 오래된 저성장 문제 등으로 인해 일자리도 사라지고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나며 슬럼화가 되었다고 해요. 청소년의 자살 문제나 어린이와 관련된 좋지 않은 상황들이 많았대요. 그래서 어린이와 함께 '가와사키 조례' 만들고 어린이 회의 장소를 근간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명을 위한 플레이파크 그리고 대안 학교등을 만들었다고 해요.
어린이들의 마켓도 열리는데요. 그냥 하지 않습니다. 3개월 동안 준비하고요. 모든 스토어를 본인들이 다 짓고 창업을 해요.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것을 판매해서 저는 가서 엄청 많이 샀어요. 스토어를 어떻게 만들지 계획도 하고 묵공 작업도 하고 저녁마다 와서 만들어요. 비가 와도 작업하고요. 사진사도 어린이고요. 알바 센터도 있어요. 잘 모르는 친구들은 알바 센터에 가서 알바를 따와서 알바를 하고 돈을 받아요.
가격을 정하고 거기에서 세금도 걷습니다. 10% 세금을 걷어서 그걸로 지역사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는데요. 그걸 250명이 모여서 합니다. 어른들은 지원할 뿐이고 어린이들이 주도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도전하고 성취하는 힘이 아니라 시도하는 힘을 주려고 하는 프로젝트들을 일본에서는 많이 하고 있었고 그 점에 제가 가장 많이 놀랐었죠. 이러한 사례를 보면 마음을 뺏기죠? 하지만 이게 저희의 미래는 아니에요.
어린이가 오너십을 가질 수 있는
도시문화에 대한 상상
한국에서는 아직 장벽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지루함과 좌절을 경험하는 공간', '다칠 수도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행사를 기획할 때 민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늘 고민하잖아요. 일본의 모험 놀이터에는 '자신의 책임 하에 자유롭게 놀자'는 구호가 어디에든 붙어 있어요. 이런 가치를 시민들과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도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고요. 어른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의 어린이들도 엄청 멋있거든요. 그런 환경이 없을 뿐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한국에서 ‘팝업플레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데요. 이때 생각하는 아주 중요한 믿음은 '어린이에게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중심이 되는 태도이고요. 재료 수급도 어린이들이 직접 합니다. 어린이들이 트롤리를 끌고 돌아 다니면서 박스도 줍고 동네 목공소에도 가서 '혹시 버리시는 거 있어요?' 하면서 재료를 모아와요. 한 번도 동네가 뭐가 있는지 몰랐고, 어른들하고 대화도 해본 적 없던 어린이들이 그렇게 하면 거기에 있는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어린이들을 위해 재료들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오면 또 주시기도 하고요. 어린이들은 그런 활동을 하면서 도시에 대한 오너십을 느끼게 돼요.
그리고 제가 처음에 했던 ‘팝업플레이’에서는 어린이들이 주체가 돼서 그 동네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포스터도 본인이 만들고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재료를 제가 준비하지 않았고, 그들의 소유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재료를 가지고 오게 했고 재료를 치우는 것도 같이 했습니다. 저희가 여러 곳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를 가보면 이미 ‘차려진 밥상’인 경우가 많거든요. ‘과연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희는 스스로를 기존의 교육이나 보육, 돌봄의 영역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직업으로서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놀이 돌봄, 놀이 서비스를 생각하시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거든요. 플레이워커는 그와 다르게 어린이의 대변자로서 그들이 그 나이대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도시 환경에서 그 허용 정도를 높여주는 일을 하고자 해요. 또한 놀이 콘텐츠가 아닌 놀이 환경을 다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놀이 콘텐츠는 어른이 아닌 어린이가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려고 고민하고,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죠. 개방적이고 유연한 공간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고, '루즈 파트'(도구)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가도 고민합니다.
실은 우리가 그런 허용 정도에 대해서 논의해보지 않은 게 많거든요. 어른들은 해보지 않았음에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른을 설득하는 건 오히려 어른이 아니에요. 어린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별 문제 없었네’ 하고 허용도가 높아져요. 공간의 에너지가 달라진다고 해야 할까요. ‘이 공간이 이렇게도 사용될 수 있다’라는 상상력이 생기죠.
이스탄불에서는 ‘놀이터가 있는 도시’에서 ‘놀이하는 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10년의 마스터 플랜을 만들고 여러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린이들이 도시 계획에 참여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우리가 삶에서 주체성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또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꾸준히 어린이들을 어떻게 주체로 초대할 것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 팝업플레이 서울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브런치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올해 패치워크에서는 '도시실험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도시실험가들을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플레이워크'라는 영역을 만들어가는 '팝업플레이 서울'의 오은비 대표님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팝업플레이'라는 실험적인 놀이판을 열며 어린이가 주체로 존중받는 '놀이 가능한 도시문화'를 제안하고 있는 과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시실험가들은 결국 더 나은 환경을 꿈꾸며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오은비 대표님의 영감이 되는 말들을 이곳에 생생하게 옮겨 봅니다.
어린이의 놀이 환경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사람,
플레이워커
저는 '플레이워커'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요. 혹시 들어보셨나요? 처음 들으면 '놀이를 일로 하는 사람?' 이런 느낌이잖아요. 놀이를 노동으로 한다고? 그럴 수 있어? 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제가 놀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놀이의 전문가는 어린이라고 생각해요. 플레이워커는 어린이들의 놀이 환경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장 활동에서부터 정책 개발까지 가는 그 여정에 있는 사람이에요.
플레이워커라는 사람은 어린이가 스스로 놀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지역 안에는 사람도 있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유형의 자원들이 있잖아요. 그런 유무형의 자원들을 엮어가면서 커뮤니티 안에서 놀이판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게는 놀이 환경을 만들고, 크게는 도시적인 관점에서 정책들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캠페인을 하기도 해요. 어린이의 필요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게 되죠. 어린이가 교도소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교도소에 수감된 부모를 만나러 가야하는 경우요. 얼마나 스트레스 강도가 높겠어요. 그럴 때 어린이와 함께 하며 어린이가 조금 더 건강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일도 하고요. 홍콩 같은 경우는 각 병원에서 플레이워커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의 필요에 따라 플레이워커들이 역량 개발도 하고 협업도 하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요. 대부분 ‘놀이’의 본질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어떻게 놀이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어린이를 대할 때는 자꾸 '나'를 투영시키고 어린이는 또 나에게 투영이 되거든요. 이것을 '전이 과정'이라고 해요. 내가 어릴 적에 놀았던 방식, 또는 나의 결핍들이 나의 경험이 되어 놀이 현장에서 펼쳐집니다. 어린이들과 무언가를 할 때 나도 모르게 그런 요소들을 넣게 되는 거예요. 저라는 사람은 학원가가 즐비한 사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3학년 이후로 즐겁게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흙을 뒤집어쓰면서 놀아본 경험이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보호자가 어린이를 키운다고 생각해보면 흙을 뒤집어쓰게 할 수 있을까요? 플레이워커는 이런 문화적 장벽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장벽들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허용 정도를 높여주는 일, 어린이의 대변인으로서 현장에 존재한다고 보시면 돼요.
스스로 놀이하고 성장하는 환경에
필요한 요소들
저는 2015년부터 '팝업플레이서울'을 운영하고 있고요. 원래는 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과학기술기획자였어요. 너무 상반되죠.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3년 정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했던 게 업이 된지 이제 11년 정도가 되었어요. '어떻게 어린이를 자신이 사는 지역을 바꿀 수 있는 주체로서 인정할 것인가', ‘어떠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워크'는 놀이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에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체험 활동이 많이 운영되는데요. '체험'은 의도 자체가 어른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놀이 환경을 조성할 때는 어린이의 의도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적과 의도 자체가 누구에서부터 시작했는가에 따라 '놀이'가 될 수도 있고 '활동'이 될 수도 있어요. 어린이에게서 일어난 것이라면 '놀이', 어른의 생각에서 시작해서 발단됐으면 '활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활동이라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 활동 안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활용의 정도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어요.
놀이 환경을 조성하려면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요. 하나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놀이가 가능한 공간이어야 하죠. 도시 안에 많은 공간이 있지만 놀이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놀이가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시간을 확보해야 해요. 충분하게 놀 시간이요. 30분이 아니라 2시간 정도는 어린이들에게 확보를 해 주는 게 필요해요.
다음은 도구입니다. 저희는 이걸 ‘루즈 파트’라고 불러요,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도구들이 풍부한 환경을 더 좋아하지만 사실 어린이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에요. '참여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보여주기식 참여 디자인이 많아요. 이것을 진정으로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공, 진심이 들어가야 하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더 많은 시간이 들어요. 그렇다보니 저희가 지역과 협업을 할 때 어려운 점이 상당히 많아요. 사실은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거든요. 하지만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것, 형태에 많이 집중해요.
그리고 마지막이 허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에요. 도시에서 어떻게 어린이에게 허용을 높일 수 있을까,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허용 범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는 일을 저희가 합니다. 저희는 어른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제가 그 환경에 존재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어린이들은 오히려 더 재미있게 잘 놀거예요. 욕도 엄청나게 하겠죠. 그런데 어른이 껴 있다면 어떨까요? 어린이가 욕을 한다거나 분쟁 상황이 발생하면 그걸 해결해주기도 하고 훈육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하지 않고 투명 망토를 입는 사람처럼 존재합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는 건 환경을 만든다는 건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 안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수정할 수 있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가 직접 자유롭게
만들고 노는 놀이터 문화
여러분에게 최초의 ‘모험 놀이터’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여기서 플레이워커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 말은, 관찰자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보통 우리는 어린이들의 놀이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어요. 힘이 가장 센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가운데로 들어가 있다는 건 '이 놀이판을 가이드하겠다'라는 의미가 돼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플레이 프레임'(놀이의 틀)이 어디까지인지를 관찰하고, 그 틀의 가장자리에 서 있거나 영향력을 많이 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개입의 법칙'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최초의 모험 놀이터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덴마크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놀이터였어요. '이걸 어떻게 해?' 싶지만 모두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것입니다. 저는 어린이의 위대함을 현장에서 많이 보아서, '이 정도는 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만큼 만들어낼 시간과 허용을 이 사회에서 주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어른의 시선에서 그들을 '작은 어른'으로서만 초대하고 있지 않나? 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영국의 '알렌'이라는 조경가가 덴마크의 최초의 모험 놀이터를 보고 너무 놀란 거예요.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간 뒤로 어린이의 놀이 환경을 조성하고 계속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관리자로서 역할을 했지만 점점 어린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 운영해 나가기 시작했죠. 최초의 모험 놀이터 플레이 워커이자 디렉터였던 존 베르틀슨이라는 사람은 '어린이에게 내가 가르칠 것은 없다. 나는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이런 태도가 플레이워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가와는 조금 다르지요.
일본에도 ‘플레이 파크’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일본의 어른들이 들고 일어난 결과입니다.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살 문제, 히키코모리 문제가 너무 심했대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생 문제를 그들은 30년 전에 겪었고요. 일본에서 플레이 파크를 만들게 된 건 1990년도부터인데요. 조경가이자 도시계획가였던 오무라 겐이치라고 하는 사람이 최초로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것이 ‘하네기 플레이 파크’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플레이 파크는 380여개가 있고, 도쿄 내에만 100개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는 하나도 없죠.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너무 놀랐어요. 플레이 파크의 갯수도 그렇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놀라웠죠. 절망하기도 했어요. '나 혼자서 이렇게 활동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곳의 역사를 보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기도 했어요. '이제 그만해야겠다'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두 번, 세 번 가면서 일본과 한국은 완전히 다른 토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이 일본과 똑같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40여년 전에 시작한 일이고, 지금과 같이 민주주의를 겪어내고 인공지능시대가 된 지금의 한국은 또 다른 모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험 놀이터 협회’의 원칙을 몇 가지 소개할게요. 하나는 ‘자연 재료로 손수 만들 것’. 주민들이 다 같이 놀이 물품을 제작해요. 기성 제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민이 운영할 것’.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 그래서 플레이 워커들이 그곳에 상주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 직접 가보고 느낀 건, '내가 이 공간에 얼마나 손때를 묻혔는가'에 따라 오너십(Ownership)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곳에 대한 소유감을 느끼죠. 반면 한국의 문제는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이렇게 함께 할 여유가 없고, 이런 곳의 종사자가 되고 싶어도 기본 소득이 충분치 않죠. 그래서 우리 주변의 이런 시스템들이 잘 구축된다면 플레이 파크와 같은 장도 조금은 편안하게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도 나름의 부침을 겪고 45년 동안 시민들이 많이 노력해서 일궈낸 결과라고 보시면 됩니다.
날이 좋은 주말이나 봄에는 하네기 플레이파크에 약300명 정도가 모여요. 어린이들이 톱도 쓰고 망치도 사용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약 20년 넘게 이곳에서 봉사해 온 할아버지도 계신 것 같아요. 본인의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오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난 사람이 현재 65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3대가 여기에서 다 놀고 있다고 보면 돼요. 청소년들이 책가방 메고 와서 노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폭력적인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놀이는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냥 사회예요.
어린이의 꿈 공원 '유메 파크'(Yume park)라는 곳은 1만 평 정도되는 아주 큰 곳이고 대안학교도 같이 있습니다. 원래 가와사키에는 공장이 많았고 오래된 저성장 문제 등으로 인해 일자리도 사라지고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나며 슬럼화가 되었다고 해요. 청소년의 자살 문제나 어린이와 관련된 좋지 않은 상황들이 많았대요. 그래서 어린이와 함께 '가와사키 조례' 만들고 어린이 회의 장소를 근간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명을 위한 플레이파크 그리고 대안 학교등을 만들었다고 해요.
어린이들의 마켓도 열리는데요. 그냥 하지 않습니다. 3개월 동안 준비하고요. 모든 스토어를 본인들이 다 짓고 창업을 해요.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것을 판매해서 저는 가서 엄청 많이 샀어요. 스토어를 어떻게 만들지 계획도 하고 묵공 작업도 하고 저녁마다 와서 만들어요. 비가 와도 작업하고요. 사진사도 어린이고요. 알바 센터도 있어요. 잘 모르는 친구들은 알바 센터에 가서 알바를 따와서 알바를 하고 돈을 받아요.
가격을 정하고 거기에서 세금도 걷습니다. 10% 세금을 걷어서 그걸로 지역사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는데요. 그걸 250명이 모여서 합니다. 어른들은 지원할 뿐이고 어린이들이 주도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도전하고 성취하는 힘이 아니라 시도하는 힘을 주려고 하는 프로젝트들을 일본에서는 많이 하고 있었고 그 점에 제가 가장 많이 놀랐었죠. 이러한 사례를 보면 마음을 뺏기죠? 하지만 이게 저희의 미래는 아니에요.
어린이가 오너십을 가질 수 있는
도시문화에 대한 상상
한국에서는 아직 장벽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지루함과 좌절을 경험하는 공간', '다칠 수도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행사를 기획할 때 민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늘 고민하잖아요. 일본의 모험 놀이터에는 '자신의 책임 하에 자유롭게 놀자'는 구호가 어디에든 붙어 있어요. 이런 가치를 시민들과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도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고요. 어른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의 어린이들도 엄청 멋있거든요. 그런 환경이 없을 뿐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한국에서 ‘팝업플레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데요. 이때 생각하는 아주 중요한 믿음은 '어린이에게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중심이 되는 태도이고요. 재료 수급도 어린이들이 직접 합니다. 어린이들이 트롤리를 끌고 돌아 다니면서 박스도 줍고 동네 목공소에도 가서 '혹시 버리시는 거 있어요?' 하면서 재료를 모아와요. 한 번도 동네가 뭐가 있는지 몰랐고, 어른들하고 대화도 해본 적 없던 어린이들이 그렇게 하면 거기에 있는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어린이들을 위해 재료들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오면 또 주시기도 하고요. 어린이들은 그런 활동을 하면서 도시에 대한 오너십을 느끼게 돼요.
그리고 제가 처음에 했던 ‘팝업플레이’에서는 어린이들이 주체가 돼서 그 동네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포스터도 본인이 만들고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재료를 제가 준비하지 않았고, 그들의 소유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재료를 가지고 오게 했고 재료를 치우는 것도 같이 했습니다. 저희가 여러 곳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를 가보면 이미 ‘차려진 밥상’인 경우가 많거든요. ‘과연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희는 스스로를 기존의 교육이나 보육, 돌봄의 영역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직업으로서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놀이 돌봄, 놀이 서비스를 생각하시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거든요. 플레이워커는 그와 다르게 어린이의 대변자로서 그들이 그 나이대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도시 환경에서 그 허용 정도를 높여주는 일을 하고자 해요. 또한 놀이 콘텐츠가 아닌 놀이 환경을 다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놀이 콘텐츠는 어른이 아닌 어린이가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려고 고민하고,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죠. 개방적이고 유연한 공간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고, '루즈 파트'(도구)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가도 고민합니다.
실은 우리가 그런 허용 정도에 대해서 논의해보지 않은 게 많거든요. 어른들은 해보지 않았음에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른을 설득하는 건 오히려 어른이 아니에요. 어린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별 문제 없었네’ 하고 허용도가 높아져요. 공간의 에너지가 달라진다고 해야 할까요. ‘이 공간이 이렇게도 사용될 수 있다’라는 상상력이 생기죠.
이스탄불에서는 ‘놀이터가 있는 도시’에서 ‘놀이하는 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10년의 마스터 플랜을 만들고 여러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린이들이 도시 계획에 참여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우리가 삶에서 주체성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또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꾸준히 어린이들을 어떻게 주체로 초대할 것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 팝업플레이 서울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브런치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