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
하고 싶은 이야기에 주목하는 공공예술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떤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나요?
요즘 전시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전시할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언노운 북 페스티벌’ 연계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얽힌 이야기들을 수집하려고 하거든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영감을 얻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질문해야 불편하지 않은지를 살피는 중이에요. 재미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많더라고요.
스스로를 표현할 때 어떤 말로 소개하나요?
제가 스스로 만든 ‘프리블릭 아트(priblic art)’라는 키워드를 꼭 말하고요. 공공예술가라고도 표현해요. 스스로 나를 다스리는 수련의 방법을 전시나 워크숍으로 풀어서 전하는 일을 한다고 말해요. ‘개인이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것이 공익활동이다’라는 말도 자주 해요. 길바닥에서 전시도 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이상한 거 많이 한다고 말하고요. (웃음)
※ 프리블릭 아트 : 개인(private)과 공공(public)을 결합해서 스스로 만든 장르
‘공공’이라는 키워드를 언제부터 이야기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영국에서 공부할 때, 석사과정을 선택하면서 처음 공공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사진 작업을 했거든요. 석사과정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고민했는데요. 하나는 ‘프린트메이킹(printmaking)’, 이미지를 고도화시키는 영역이었고요. 하나는 ‘퍼블릭 스피어(public sphere)’, 우리말로는 공론장(公論場)이라고 불리는 영역이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이미지를 고도화하는 일보다 예술의 쓰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저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고, 그때부터 ‘퍼블릭(public)이 뭐지?’를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예술이 어떻게 토론의 현장이 될 수 있을까? 예술은 사회적으로 어떤 쓰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때부터 보러 다니고 알아가기 시작했죠. 저에게 조언을 해 주셨던 ‘멜라니 조던’이라는 교수님은 공공성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실천적 개입을 연결하는 작가 이기도 했는데요. 교수님이 ‘네가 느끼고 있는 개인적인 불편함,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구조의 영향일 수 있다. 너의 불편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 말이 위로가 됐어요. 물론 저의 불편함이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지 딱 짚어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이해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제가 그런 주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회적 구조와 엮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제가 해왔던 예술활동 역시 단순히 내 안의 응어리를 푸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창피한데도 그걸 풀어내서 누군가에게 힘을 주거나 무언가 같이 하자는 약속을 하는, 사회적인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어요.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스스로를 사진으로 직면한 'Self-doubts Project'
처음에는 사진 작업을 했다고 했잖아요. 예술가로 활동하고 싶으면서도 계속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스스로를 직면하는 자화상 시리즈가 기억에 남는데요.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작업을 하다가 공공예술 영역으로 넘어간 게 흥미로워요.
맞아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퍼블릭 스피어(public sphere)’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스스로의 퀴어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거나, 소수자를 대변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찍는다거나, 사회적 현장의 전면에 나서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나 예술가로 살고 싶은데, 쫄았어.’ 이러면서 자화상 작업을 하던 애가 ‘그런데 이것도 공공활동 아니요?’ 주장하면서 온 거니까 ‘얘 좀 재밌네’ 생각해줬던 것 같아요.
‘프리블릭 아트’라는 개념도 석사 졸업 논문을 쓰면서 만들게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개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을 것 같은데요. (웃음) 그 개념을 만들면서 무엇에 대해 많이 생각했나요?
개인과 사회가 맞닿는 지점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어요. 사실 끊임없이 토론해야 하는 학교에서의 환경이 저에게는 버거웠어요. 내 의견을 끝까지 피력해야 하는데 저는 삼키는 말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왜 이렇게 생각했냐’고 계속해서 물어보는 사람들과 매일 만나서 ‘이게 맞냐’, ‘저게 맞냐’를 말해야 했는데요. 그렇게 버거워하는 와중에도 제가 계속해서 말하는 게 있더라고요.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예술가들이 그렇게 활동하는 이유는 ‘세상이 고장났으니까 고쳐야 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개념이나 유행, 동료들의 압박 같은 것을 떠나서 그 사람이 살아온 개인적인 시간 안에 무언가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에는 아무리 사회적인 예술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 속에서 직접 경험했고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유명한 이론이나 개념보다 개인의 삶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제 안에서 뱅글뱅글 맴돌았어요.
그래서 ‘프리블릭(priblic)’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게 된 거였어요. 사실은 그렇게 뾰족한 개념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문제가 뭔데?’, ‘그래서 다음에는 뭘 할건데?’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뾰족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 나를 막 들여다보기 시작했거든요. ‘몰라, 모르겠어.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 그냥 이렇게 한번 해볼게.’ 하는 마음이었죠.
이해가 돼요. 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만들어왔던 예술 작업을 처음으로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거잖아요. 나의 개인적인 영역이 공공의 영역과 맞닿는 지점을 이제 막 생각해보기 시작했는데 2년 안에 갑자기 액티비즘으로 나아간다는 건 스스로도 어색하게 느껴졌을 거 같고요. ‘사회적 활동은 개인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느껴져요.
맞아요. 어떤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응당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치유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돌아온 뒤,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술활동을 만들어 왔는데요. 주로 전시와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왔어요. 먼저 ‘전시’라는 표현방식이 비치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 이 얘기를 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할지도 몰라.’라는 마음으로 했다고 해야 하나요. 전시의 퀄리티를 떠나서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하는데, 내가 느낀 것을 말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컸어요. 듣기 좋은 말이나 해야 할 것 같은 말이 아니라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쉽게 감화되는 사람이라서 순간 순간 ‘존재’에 대한 불안을 많이 느끼거든요. ‘이건 내가 아닌데, 진짜 나는 뭐지?’ 하는 불안감이요. 전시를 하고 나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하고서는 또 다음 것을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몇 가지로 추려서 작업하고 있지만 한동안은 안 해본 것을 많이 시도했어요. 레진을 한다거나, 바느질을 한다거나, 목공을 한다거나… ‘네가 그걸 왜 해?’ 싶은 것들을 해냈을 때의 쾌감도 있었고 못해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것을 실천했을 때 오는 해방감이 크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스스로 들어줬다는 느낌이요. 내가 나를 스스로 풀어주는 순간들이 좋고, 다 차려놓고 놨을 때 제 마음 속에 있던 게 나오니까 한 번 거리를 두고 그걸 다시 보게 되는 게 좋아요. ‘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건 줄 알았는데 다 꺼내놓고 보니까 이게 이런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네.’ 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요. 시작할 때는 어떤 불편함에서 시작하는데 작업하는 과정에서 내가 계속 풀어지고 편해지는 게 좋아요.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빨간통프로젝트의 정산》(2020, 하이랜드) 전시 | ▼ 《이야기, 아올다》(2022, 양평생활문화센터 작은 미술산책 아올다) 전시
저 역시 예술의 세계에 이끌렸던 건 억압된 나를 넘어선 무언가를 상상해보고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요. 비치님이 예술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사람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활동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제가 ‘해방’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쓰더라고요.
요즘은 나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내기 위한 전시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엮는 공공예술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워크숍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하고요. 비치님에게 공공예술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왜 이런 활동을 지속하나요?
사실 처음 워크숍을 했을 때는 삐질삐질 땀 흘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안 좋았던 것 같고, 다 말아먹은 것 같아서 우울했는데 어느새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왜 이걸 포기를 안 할까? 왜 계속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공부하려고 하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할까? 포기 안 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까지밖에 못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알려줘도 내가 직접 느끼고 생각한 게 아니면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그런데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꺼냈을 때 사람들이 그에 반응하고 자신의 것을 꺼내서 이야기하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무언가가 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제와서 돌아보면, 저는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 예술을 시작했다기보다, 그냥 제가 하면서 너무 신나고 재밌어서 그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예술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삶을 배워나가면서 ‘아, 이런 게 공공예술인가?’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게 어떤건지, 서로를 어떻게 배려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어떤 게 있어요?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머니들하고 마음지도를 그리면서 서로 이야기하던 장면이랑, 어린이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면서 제가 만든 도구의 빈칸을 자유롭게 채우고 붙이던 장면이요. 신나는 감정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도 신나더라고요. 누군가가 재미있게 자유롭게 놀게끔 돕고 있다는 것, 그 사람이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게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는 사람들의
다름이 공존하는 마을
배다리라는 동네에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발걸음하고 있나요?
배다리를 오게 된 건, 제가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제 친구가 엄마가 재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오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할아버지의 옛 약방을 새롭게 되살려내는 일을 하고 계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도시재생에 관한 일은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 후 친구인 해리, 성은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꿈을 펼쳐나가는 여정을 보면서 ‘중심이 있는 친구들이 꾸준히 해내면 뭔가가 되는구나’라는 걸 해마다 느꼈어요. 동양가배관이 패치워크가 되는 순간도 감동적이었고요. 저도 이곳에서 ‘배다리발굴단’과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기도 하고 작년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랑 로컬 프로젝트 함께 하면서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업 방식을 경험하기도 했는데요.


배다리에서 진행했던 '배다리 발굴단' 워크숍 현장
그러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해왔던 모든 일들이 의미없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저에게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말해준 건 아니었지만 자기 삶을 성실하고 애틋하게, 정성껏 가꾸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거든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내 방식대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걸 천천히 경험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해요. 다정하고 따뜻한 말로 감싸는 동네는 아니지만 무관심한 것 같은데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툭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섬세한, 재미있는 동네예요.
이전에는 프로그램 단위로 이곳을 찾았다면, 작년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함께 일을 만들어봤던 것 같아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두렵기도 했고 상상만 하던 일을 현실화해볼 수 있다는 게 기쁘기도 했고요. 이 일은 비치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나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은 저에게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조형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오랜 시간 배다리를 오가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내 안에 흩뿌려져 있다가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했고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네?’ 했던 것도 많았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과정을 만드는 게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지역에서는 막상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함께 작업해준 작가님들도 각자 다르면서도 서로에게 열려 있었어요. 그게 저에겐 큰 위로로 다가왔어요. 서로의 생각과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이 다 같은 곳을 향해 있다는 게 좋았어요.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현장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면서 제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예술의 쓸모’를 확인하는 것 같았어요.
동네와 은은하게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조금씩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는 걸 느꼈는데요. 무척 느린 과정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만들었다는 거. 그게 저는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배다리 마을 안에서의 장비치 작가의 모습, 그리고 2024 배다리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했던 '배다리 마음지도' 작업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각자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이상적인 미래와 같은 것들로 출발점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그리고 예술과는 상관없는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당신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공공예술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비치님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편안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현장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비치님이 생각하는 편안함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편안함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제가 늘 말하려다가 참고, 말하려다가 참는 사람이다 보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라는 분위기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패치워크에게 많이 배웠어요. 워크숍의 도구는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지, 이야기는 어떤 순서로 할지,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 건네야 할지와 같은 것들이요. 내가 내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내도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내 이야기만 하지 않게 하는 것,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 이 이야기가 단순 성토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올해도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요. 사는 곳도 가깝지 않은데 왜 이곳에 계속 오시나요? (웃음)
일단은 ‘이게 되네?’라는 순간을 경험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커요. 그리고 패치워크가 만들고 있는 세계관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의 일과 삶에는 더 많은 상상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공감하고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것, 편안한 개인을 만들고 편안해진 개인이 서로를 보듬는 과정에 기여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서 응원하고 싶고요.
그리고 배다리에서 만난 어른들에게서 받는 영감도 커요. 어른들이 쌓아온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데, 그걸 강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해주시는 느낌이 감사해요. 늘 ‘배워야 할 게 많다’고 말씀하시고 배우려고 하는 모습,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태도, 기다려주시는 모습 등에서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쌓아온 사람들이 가지는 존중의 태도를 느껴요.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가
함께 편안하게 머무는 현장 만들기
올해는 ‘언노운 북 페스티벌’을 만드는 과정에 지역의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초대하고 함께 하는 감각을 만들어보는 역할로 비치님을 초대했는데요. 이걸 수락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요즘 그동안 제가 전시를 하고 워크숍을 하고 이 과정 자체가 공동창작의 과정을 실험해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작년에 했던 공공예술 프로젝트 역시 공동창작의 과정이었던 것 같고요. 거기서 한 걸음 두 걸음 더 걸어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누군가가 희생되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 크지 않은 방식의 공동창작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신났던 것 같고요. 솔직히 어려운 도전이지만 ‘이게 되네?’가 한번 더 올 것 같다는 예감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그 이야기들이 엮어지면서 하나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요. 꾸준히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고요.
그럼 올해 어떤 방식으로 이 작업을 풀어가보고 싶으세요?
지역에 조금 더 녹아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마을 책방에서 일일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해보려 해요. 책방에서의 하루를 기록하는 작업도 하면서, 마을분들에게 찾아가는 워크숍을 해보려고 해요. 인터뷰도 아닌데 워크숍도 아닌, 이상한 말 걸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마을을 향한 지역민들의 기억, 생각을 수집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로 지역을 더 진하게 배우고 싶어요.
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
하고 싶은 이야기에 주목하는 공공예술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떤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나요?
요즘 전시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전시할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언노운 북 페스티벌’ 연계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얽힌 이야기들을 수집하려고 하거든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영감을 얻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질문해야 불편하지 않은지를 살피는 중이에요. 재미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많더라고요.
스스로를 표현할 때 어떤 말로 소개하나요?
제가 스스로 만든 ‘프리블릭 아트(priblic art)’라는 키워드를 꼭 말하고요. 공공예술가라고도 표현해요. 스스로 나를 다스리는 수련의 방법을 전시나 워크숍으로 풀어서 전하는 일을 한다고 말해요. ‘개인이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것이 공익활동이다’라는 말도 자주 해요. 길바닥에서 전시도 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이상한 거 많이 한다고 말하고요. (웃음)
※ 프리블릭 아트 : 개인(private)과 공공(public)을 결합해서 스스로 만든 장르
‘공공’이라는 키워드를 언제부터 이야기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영국에서 공부할 때, 석사과정을 선택하면서 처음 공공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사진 작업을 했거든요. 석사과정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고민했는데요. 하나는 ‘프린트메이킹(printmaking)’, 이미지를 고도화시키는 영역이었고요. 하나는 ‘퍼블릭 스피어(public sphere)’, 우리말로는 공론장(公論場)이라고 불리는 영역이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이미지를 고도화하는 일보다 예술의 쓰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저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고, 그때부터 ‘퍼블릭(public)이 뭐지?’를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예술이 어떻게 토론의 현장이 될 수 있을까? 예술은 사회적으로 어떤 쓰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때부터 보러 다니고 알아가기 시작했죠. 저에게 조언을 해 주셨던 ‘멜라니 조던’이라는 교수님은 공공성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실천적 개입을 연결하는 작가 이기도 했는데요. 교수님이 ‘네가 느끼고 있는 개인적인 불편함,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구조의 영향일 수 있다. 너의 불편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 말이 위로가 됐어요. 물론 저의 불편함이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지 딱 짚어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이해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제가 그런 주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회적 구조와 엮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제가 해왔던 예술활동 역시 단순히 내 안의 응어리를 푸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창피한데도 그걸 풀어내서 누군가에게 힘을 주거나 무언가 같이 하자는 약속을 하는, 사회적인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어요.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스스로를 사진으로 직면한 'Self-doubts Project'
처음에는 사진 작업을 했다고 했잖아요. 예술가로 활동하고 싶으면서도 계속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스스로를 직면하는 자화상 시리즈가 기억에 남는데요.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작업을 하다가 공공예술 영역으로 넘어간 게 흥미로워요.
맞아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퍼블릭 스피어(public sphere)’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스스로의 퀴어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거나, 소수자를 대변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찍는다거나, 사회적 현장의 전면에 나서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나 예술가로 살고 싶은데, 쫄았어.’ 이러면서 자화상 작업을 하던 애가 ‘그런데 이것도 공공활동 아니요?’ 주장하면서 온 거니까 ‘얘 좀 재밌네’ 생각해줬던 것 같아요.
‘프리블릭 아트’라는 개념도 석사 졸업 논문을 쓰면서 만들게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개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을 것 같은데요. (웃음) 그 개념을 만들면서 무엇에 대해 많이 생각했나요?
개인과 사회가 맞닿는 지점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어요. 사실 끊임없이 토론해야 하는 학교에서의 환경이 저에게는 버거웠어요. 내 의견을 끝까지 피력해야 하는데 저는 삼키는 말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왜 이렇게 생각했냐’고 계속해서 물어보는 사람들과 매일 만나서 ‘이게 맞냐’, ‘저게 맞냐’를 말해야 했는데요. 그렇게 버거워하는 와중에도 제가 계속해서 말하는 게 있더라고요.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예술가들이 그렇게 활동하는 이유는 ‘세상이 고장났으니까 고쳐야 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개념이나 유행, 동료들의 압박 같은 것을 떠나서 그 사람이 살아온 개인적인 시간 안에 무언가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에는 아무리 사회적인 예술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 속에서 직접 경험했고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유명한 이론이나 개념보다 개인의 삶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제 안에서 뱅글뱅글 맴돌았어요.
그래서 ‘프리블릭(priblic)’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게 된 거였어요. 사실은 그렇게 뾰족한 개념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문제가 뭔데?’, ‘그래서 다음에는 뭘 할건데?’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뾰족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 나를 막 들여다보기 시작했거든요. ‘몰라, 모르겠어.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 그냥 이렇게 한번 해볼게.’ 하는 마음이었죠.
이해가 돼요. 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만들어왔던 예술 작업을 처음으로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거잖아요. 나의 개인적인 영역이 공공의 영역과 맞닿는 지점을 이제 막 생각해보기 시작했는데 2년 안에 갑자기 액티비즘으로 나아간다는 건 스스로도 어색하게 느껴졌을 거 같고요. ‘사회적 활동은 개인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느껴져요.
맞아요. 어떤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응당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치유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돌아온 뒤,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술활동을 만들어 왔는데요. 주로 전시와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왔어요. 먼저 ‘전시’라는 표현방식이 비치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 이 얘기를 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할지도 몰라.’라는 마음으로 했다고 해야 하나요. 전시의 퀄리티를 떠나서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하는데, 내가 느낀 것을 말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컸어요. 듣기 좋은 말이나 해야 할 것 같은 말이 아니라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쉽게 감화되는 사람이라서 순간 순간 ‘존재’에 대한 불안을 많이 느끼거든요. ‘이건 내가 아닌데, 진짜 나는 뭐지?’ 하는 불안감이요. 전시를 하고 나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하고서는 또 다음 것을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몇 가지로 추려서 작업하고 있지만 한동안은 안 해본 것을 많이 시도했어요. 레진을 한다거나, 바느질을 한다거나, 목공을 한다거나… ‘네가 그걸 왜 해?’ 싶은 것들을 해냈을 때의 쾌감도 있었고 못해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것을 실천했을 때 오는 해방감이 크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스스로 들어줬다는 느낌이요. 내가 나를 스스로 풀어주는 순간들이 좋고, 다 차려놓고 놨을 때 제 마음 속에 있던 게 나오니까 한 번 거리를 두고 그걸 다시 보게 되는 게 좋아요. ‘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건 줄 알았는데 다 꺼내놓고 보니까 이게 이런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네.’ 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요. 시작할 때는 어떤 불편함에서 시작하는데 작업하는 과정에서 내가 계속 풀어지고 편해지는 게 좋아요.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빨간통프로젝트의 정산》(2020, 하이랜드) 전시 | ▼ 《이야기, 아올다》(2022, 양평생활문화센터 작은 미술산책 아올다) 전시
저 역시 예술의 세계에 이끌렸던 건 억압된 나를 넘어선 무언가를 상상해보고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요. 비치님이 예술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사람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활동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제가 ‘해방’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쓰더라고요.
요즘은 나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내기 위한 전시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엮는 공공예술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워크숍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하고요. 비치님에게 공공예술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왜 이런 활동을 지속하나요?
사실 처음 워크숍을 했을 때는 삐질삐질 땀 흘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안 좋았던 것 같고, 다 말아먹은 것 같아서 우울했는데 어느새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왜 이걸 포기를 안 할까? 왜 계속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공부하려고 하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할까? 포기 안 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까지밖에 못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알려줘도 내가 직접 느끼고 생각한 게 아니면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그런데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꺼냈을 때 사람들이 그에 반응하고 자신의 것을 꺼내서 이야기하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무언가가 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제와서 돌아보면, 저는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 예술을 시작했다기보다, 그냥 제가 하면서 너무 신나고 재밌어서 그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예술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삶을 배워나가면서 ‘아, 이런 게 공공예술인가?’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게 어떤건지, 서로를 어떻게 배려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어떤 게 있어요?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머니들하고 마음지도를 그리면서 서로 이야기하던 장면이랑, 어린이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면서 제가 만든 도구의 빈칸을 자유롭게 채우고 붙이던 장면이요. 신나는 감정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도 신나더라고요. 누군가가 재미있게 자유롭게 놀게끔 돕고 있다는 것, 그 사람이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게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는 사람들의
다름이 공존하는 마을
배다리라는 동네에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발걸음하고 있나요?
배다리를 오게 된 건, 제가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제 친구가 엄마가 재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오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할아버지의 옛 약방을 새롭게 되살려내는 일을 하고 계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도시재생에 관한 일은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 후 친구인 해리, 성은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꿈을 펼쳐나가는 여정을 보면서 ‘중심이 있는 친구들이 꾸준히 해내면 뭔가가 되는구나’라는 걸 해마다 느꼈어요. 동양가배관이 패치워크가 되는 순간도 감동적이었고요. 저도 이곳에서 ‘배다리발굴단’과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기도 하고 작년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랑 로컬 프로젝트 함께 하면서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업 방식을 경험하기도 했는데요.
배다리에서 진행했던 '배다리 발굴단' 워크숍 현장
그러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해왔던 모든 일들이 의미없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저에게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말해준 건 아니었지만 자기 삶을 성실하고 애틋하게, 정성껏 가꾸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거든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내 방식대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걸 천천히 경험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해요. 다정하고 따뜻한 말로 감싸는 동네는 아니지만 무관심한 것 같은데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툭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섬세한, 재미있는 동네예요.
이전에는 프로그램 단위로 이곳을 찾았다면, 작년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함께 일을 만들어봤던 것 같아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두렵기도 했고 상상만 하던 일을 현실화해볼 수 있다는 게 기쁘기도 했고요. 이 일은 비치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나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은 저에게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조형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오랜 시간 배다리를 오가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내 안에 흩뿌려져 있다가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했고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네?’ 했던 것도 많았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과정을 만드는 게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지역에서는 막상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함께 작업해준 작가님들도 각자 다르면서도 서로에게 열려 있었어요. 그게 저에겐 큰 위로로 다가왔어요. 서로의 생각과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이 다 같은 곳을 향해 있다는 게 좋았어요.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현장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면서 제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예술의 쓸모’를 확인하는 것 같았어요.
동네와 은은하게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조금씩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는 걸 느꼈는데요. 무척 느린 과정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만들었다는 거. 그게 저는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배다리 마을 안에서의 장비치 작가의 모습, 그리고 2024 배다리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했던 '배다리 마음지도' 작업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각자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이상적인 미래와 같은 것들로 출발점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그리고 예술과는 상관없는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당신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공공예술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비치님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편안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현장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비치님이 생각하는 편안함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편안함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제가 늘 말하려다가 참고, 말하려다가 참는 사람이다 보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라는 분위기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패치워크에게 많이 배웠어요. 워크숍의 도구는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지, 이야기는 어떤 순서로 할지,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 건네야 할지와 같은 것들이요. 내가 내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내도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내 이야기만 하지 않게 하는 것,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 이 이야기가 단순 성토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올해도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요. 사는 곳도 가깝지 않은데 왜 이곳에 계속 오시나요? (웃음)
일단은 ‘이게 되네?’라는 순간을 경험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커요. 그리고 패치워크가 만들고 있는 세계관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의 일과 삶에는 더 많은 상상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공감하고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것, 편안한 개인을 만들고 편안해진 개인이 서로를 보듬는 과정에 기여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서 응원하고 싶고요.
그리고 배다리에서 만난 어른들에게서 받는 영감도 커요. 어른들이 쌓아온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데, 그걸 강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해주시는 느낌이 감사해요. 늘 ‘배워야 할 게 많다’고 말씀하시고 배우려고 하는 모습,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태도, 기다려주시는 모습 등에서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쌓아온 사람들이 가지는 존중의 태도를 느껴요.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가
함께 편안하게 머무는 현장 만들기
올해는 ‘언노운 북 페스티벌’을 만드는 과정에 지역의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초대하고 함께 하는 감각을 만들어보는 역할로 비치님을 초대했는데요. 이걸 수락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요즘 그동안 제가 전시를 하고 워크숍을 하고 이 과정 자체가 공동창작의 과정을 실험해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작년에 했던 공공예술 프로젝트 역시 공동창작의 과정이었던 것 같고요. 거기서 한 걸음 두 걸음 더 걸어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누군가가 희생되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 크지 않은 방식의 공동창작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신났던 것 같고요. 솔직히 어려운 도전이지만 ‘이게 되네?’가 한번 더 올 것 같다는 예감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그 이야기들이 엮어지면서 하나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요. 꾸준히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고요.
그럼 올해 어떤 방식으로 이 작업을 풀어가보고 싶으세요?
지역에 조금 더 녹아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마을 책방에서 일일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해보려 해요. 책방에서의 하루를 기록하는 작업도 하면서, 마을분들에게 찾아가는 워크숍을 해보려고 해요. 인터뷰도 아닌데 워크숍도 아닌, 이상한 말 걸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마을을 향한 지역민들의 기억, 생각을 수집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로 지역을 더 진하게 배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