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아카이브][동네사람 인터뷰] 책방지기가 된 토박이, 삼성서림 이혜숙


책방지기가 된 토박이


Q. 선생님과 삼성서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남편과 함께 삼성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이혜숙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고요. 10년 전, 45년 넘게 삼성서림을 운영했던 선대 사장님께 서점을 이어받아 운영해 오고 있어요. 남편은 이런저런 것을 만들기를 좋아해서 스피커나 액자, 책장을 만들거나 고치는 등 주로 서점 공간과 시설의 관리를 맡고 있어요. 반면 저는 서가에 진열될 책을 채우거나 정리하는 일을 주로 보고 있고요. 그래서 남편은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저는 소프트웨어, 당신은 하드웨어를 담당한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Q. 서점을 운영할 때 중시하는 원칙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서점 운영의 원칙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로 쌓여간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10년 차가 되면서 이제야 책방이 이런 거구나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일단 책방 운영을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 보면, 책을 좋아하고 얘기하는 것과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건 분명히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책방 운영은 결국 두 가지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먼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팔릴 수 있는 상품을 갖춰야겠죠. 삼성서림을 예로 들면 과거와 달리 교과서나 참고서를 찾는 이는 없지만,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험서나 소설을 찾는 분들은 많아요. 반면 요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카테고리의 서적이 아니더라도 서점이라면 좋은 책을 갖춰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좋은 책이라는 건 역사서든, 인문학 서적이든 내용이 좋은 양질의 서적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삼성서림의 운영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Q. 서점을 운영하는 매일매일은 대체로 어떠신가요? 인상 깊었던 손님이나 일화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대략 5년 전, 한 노인 분이 서점에 들어와서는 옥편을 찾으시는 거예요. 경험상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옥편을 찾을 때는 책 자체가 아닌 어떤 글자를 궁금해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왜 찾으시는지 여쭤봤거든요. 알고 보니 이분은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이고, 지금은 이산가족이 된 한 누님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한자를 찾고 싶으셨던 거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한자를 제대로 써야 그게 온전한 글자라고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웃음)

그분이 말씀하신 건 성함에 ‘패’라는 글자가 들어가는데 그 한자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때 문득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속 한 구절이 떠올랐죠.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란 구절이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원문을 찾은 뒤 종이에 적어 이 글자 아니냐 여쭤보니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제 됐다고, 누나에게 부끄러워서 내가 어떻게 죽나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요. 인상적인 손님 이야기를 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지만 이 손님의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Q. 삼성서림은 소규모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꾸준히 개최해오셨어요. 그동안 어떤 행사를 해오셨고,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책방을 시작하면서 우린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다가 은퇴하고 이 일을 시작한건데, 이젠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각자 해보고 싶었던 걸 취미로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남편은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저는 책과 관련된 걸 찾다가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제는 공간이 생겼으니 틈틈히 음악회 같은 것도 하자고 했죠. 코로나 이전에는 매해 한번씩 음악회와 글 낭독회를 했어요. 주변에 음악이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사에 참여하거나 보러 올 사람들은 많았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아무래도 두 번째 음악회인데요. 고등학생 때 친구 중 한 명이 암에 걸린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투병 중인 친구를 위한 음악회를 준비하게 됐어요. 작곡하는 작은 아이에게 부탁해서 친구를 위한 곡을 만들기도 했고, 각별한 마음으로 진행한 이벤트다 보니 아무래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우린 어디서 왔나, 
뿌리를 찾는 배다리


Q. 배다리 태생으로 배다리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배다리는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와 또래 친구들에게는 그야말로 전부인 동네죠. 이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전부 보냈고, 부모님도 결혼해서 줄곧 살아오신 동네니까요. 어머니에게 일제 강점기나 해방 직후, 6.25전쟁 당시 배다리 얘기를 줄줄이 듣고 자랐는데 지금은 그 흔적들이 대부분 사라졌죠.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도 많아요. 도원역 방면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대장간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철물점들이 여럿 있죠. 동인천 일대 참외전 자리에는 여전히 과일 가게들이 영업하고 있고요. 10번 버스는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부터 한결같이 같은 경로를 지나고 있어요. 그렇게 보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흔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구나, 문화재도 아니고 대단한 건축물도 아닌 여러 가난의 흔적들이 이렇게라도 남아 있구나 싶은 마음이죠.



Q. 여러모로 각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가 있네요.

지명에 담긴 흔적이나 생활의 흔적 같은 걸 볼 때면 저는 배다리라는 동네가 마지막 남은 토박이들의 흔적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어떤 큰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나 장소,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정신적 요소를 지켜내는 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 옛날에는 참 가난했어요. 집다운 집에 사는 일가족조차 드문 시대였죠. 그래서 저 포함 친구들은 대부분 인천 안에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아다녔어요. 이곳에서 쫓겨나면 만수동으로, 또 주안동으로, 그런 가난이 싫어 이곳을 떠나고 싶었고 뭔가 더 대단한 걸 바라보며 달려왔는데요. 19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지나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거예요. 이렇게나 번듯하게 개발된 시대가 되었는데 말이죠.

짐작건대 이 시대는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잊힌 우리의 들꽃이나 나무를 찾고 가꾸려는 어느 조경사분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언젠가 잃었던 것들을 바로 배다리에서 찾아보려는 건 아닐까 그런 느낌인 거죠. 사람들이 인천의 원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동네로 겨우 하나 남았는데, 이 지역만큼은 그대로 남아줬으면 해요.


Q. 이민 생활 경험 역시 그런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그렇죠. 캐나다에서 13년을 지내다 귀국하고 보니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있던 토론토는 아무 데나 찍어도 달력 사진이 될 수 있을 만큼 멋진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도시거든요. 그런데 귀국해서 강화도를 가봤더니 세상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 거예요. 다들 해외 생활을 겪고 나면 애국자가 되듯이 저도 애국자가 되어 돌아왔고 소중한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Q. 끝으로, 삼성서림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인가요?

책방을 하면서 체감했던 건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정말 다양한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종교 서가만 해도 기독교 서적들 바로 옆에 불교 서적이 진열되어 있죠. 정치 서가에는 전두환, 노무현, 김대중 관련 서적이 모두 섞여 있고요. 문학 서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회와 사람을 보는 다양한 글들이 넘치죠. 아마도 굴곡진 세월을 겪어온 우리의 모습이 반영된 그런 결과겠죠. 책방 안에서 여러 책을 정리하면서 인간사 돌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더욱 관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책방하면서 얻은 기쁨이라면 기쁨이랄까요.


인터뷰 | 김영진
편집 | 강필호

사진 | 장비치, 김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