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실험 이야기]주변으로부터 시작하는 기록의 태도

2026-08-11

2026년 여름, 도시산보클럽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주변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할 수 있을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온 두 팀 노네임프레스와 레어바이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영감이 가득한 이야기라 이곳에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① 공적 제도가 기록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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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프레스의 아카이브는 지극히 사적인 관심과 흥미에서 시작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공적인 제도가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다면?” 제도권의 기록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무명의 장인, 제대로 수집·연구되지 않아 빈칸으로 남아 있는 지역 미술사, 개인이 수집하고 보존해온 한국 디자인의 기록들. 노네임프레스는 이런 ‘공백’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집하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빈칸을 완벽하게 메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훼손되고 변색된 기록을 보정하지 않은 채 보여줌으로써 ‘왜 이것은 지금까지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 자체를 아카이브에 남깁니다. 그래서 이들의 사적인 아카이브는 개인적인 수집에 머물지 않고, 공적인 기록과 제도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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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에게 아카이브는 재료이기도 하고, 공백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고, 비판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사적인 취미 같은 것이기도 해요. 지금 시점에서 이 아카이브를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면, 모든 게 빨리빨리 지나가는 지금 시점에 더 정확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뒤에 있는 맥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단순한 호기심으로 재현되는 것이든, 아니면 실제로 어떤 제도의 전환을 위해 쓰이는 자료이든, 뒤를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건 돌아보는 태도이거나, 우리가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꼼꼼히 관찰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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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프레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도시산보클럽의 멤버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수집하고 발견한 것들을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엮어내는 워크숍을 함께 진행해 보았어요. 노네임프레스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흔히 '전시를 하는 기관'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공적인 기관의 근본적인 역할은 지역의 역사를 정립하고, 지역의 미술품 및 자료를 수집·소장하고, 연구하고, 보존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러한 관점을 작은 진(zine)에 적용해 각자가 생각하는 보존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수집·소장하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보며 '나는 무엇을 기억·기록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② 주변을 감상적인 태도로 바라보기


노네임프레스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를 질문했다면, 레이바이크와 함께 한 워크숍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질문하는 시간이었어요. 탁본 워크숍에 앞서 레어바이크의 작업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작업의 기술보다 ‘감상적인 태도’였어요.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록하기 위해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지요. 레어바이크의 작업 방식 중 하나인 '탁본' 역시 결과물을 잘 만드는 것보다 그 표면을 만지고 요철을 따라가며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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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주변을 들여다보는 어떤 감상적인 태도랄까, 저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산행을 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산을 정복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산을 오르면서 얼마나 감상하는가. 그것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따 탁본을 뜨실 때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찬찬히 감상적인 태도로 주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강의에서 소개한 ‘고현학(考現學)’과도 이어졌습니다. 과거의 유물을 연구하는 고고학과 달리, 고현학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평범한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이름난 건축물이나 귀중한 유물이 아니라 거리의 간판, 생활도구, 집의 흔적처럼 너무 일상적이어서 기록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들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래된 동네의 표면과 질감,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고쳐 만든 물건, 사라지기 직전의 건물과 흔적들. 결국 기록의 시작은 거창한 대상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주변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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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탁본'의 방식으로 배다리 거리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워크숍을 함께 진행했는데요.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탁본을 뜨면 질감이 도드라지면서 새로운 게 보이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탁본을 뜨면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도시의 풍경들이 기억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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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번의 워크숍을 통해 우리가 배운 '기록의 기술'은 이런 거였어요. 주변을 자세히 바라보기. 당연해서 지나쳤던 것에 관심 갖기. 그리고 왜 어떤 것은 기록되고 어떤 것은 기록되지 않는지 질문하기.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을 이미 정해진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관찰을 통해 새롭게 기록할 가치를 발견하기. 이후 도시산보클럽은 평소 관심 가지지 않았던 우리의 일상과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으로 이동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꺼내 놓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