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PATCHWORK THE CITY] 오래된 조각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 보풀

2026-06-22

패치워크는 매년 지역과 예술가를 연결해 도시의 오랜 자산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예술의 진짜 힘은 지나치기 쉬운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의 오랜 자산과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예술가가 연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변화의 힘을 믿는 편이기도 하고요. 올해도 <PATCHWORK THE CITY>라는 이름으로 릴레이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4명의 작가들이 지역에 스며들어 머물며 교류하는 시간을 가지고, 이 과정 속에서 발견한 재료, 이야기, 영감을 기존의 작업·세계관을 연결해 전시를 펼쳐낼 예정입니다. 


두번째 작가는 '보풀'입니다.  '보풀'은 오래된 옷감과 버려질 위기에 처한 종이조각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형태로 구성하는 '자투리 콤포지션' 작업을 이어왔어요. ‘보풀’은 반듯한 모양이나 완벽한 마감을 추구하지 않아요. 어딘가 엉성하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죠. 오래된 흔적과 다채로운 모양의 건물들이 리듬감 있게 어우러지는 배다리와 ‘보풀’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오래된 것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엮어내는 사람이기에, 이번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전시를 앞두고 ‘보풀’을 운영하는 이차희 작가와 만나 ‘콤포지션’의 세계와 작가 고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배다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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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보풀’의 첫 작업은 아주 개인적인 필요에서 시작됐어요. 당시 어깨가 안 좋아서 손으로 들 수 있는, 끈이 짧은 가방이 필요했거든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갔는데 상품이 너무 많았고, 고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던 때라 ‘필요하다고 해서 손쉽게 사버리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한 번 멈춰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있었으니까 ‘안 입는 옷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제가 물건을 잘 못 버리는 편인데, 오래전에 산 겨자색 치마가 있었어요. 전혀 입지 않게 되었는데도 색깔이 너무 예뻐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 치마를 가방으로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보풀의 시작이었어요.


이전에도 재봉이나 바느질을 해본 경험이 있었나요?

원래도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써본 적은 많지 않았어요. 환경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랑 친구네 집에 모인 적이 있었는데, 그 집에 재봉틀이 있었거든요. 안 입는 우비 재질의 천으로 장우산 커버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 재봉틀을 써봤는데 생각보다 쉽더라고요. 원래 저는 뭘 시작한다고 해서 장비부터 사는 스타일은 아닌데, ‘가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당근에서 재봉틀을 샀어요.


처음 만든 가방을 완성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수많은 물건 중에서 내 취향을 찾는 게 아니라, ‘아주 정확한 내 취향의 물건이 나왔다’는 감각이 가장 컸어요. ‘보풀’의 특징이라 하면 너덜너덜하고,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제 취향에 딱 맞는 가방은 시중에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처음 만든 가방도 가장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처음이었는데도 제가 원래 좋아하던 느낌이 그대로 담겼죠. 그래서 “이건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애정이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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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만들기에서 하나의 활동으로 확장된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 만든 가방을 주변 사람들이 보고 예쁘다고 해줬어요. 물론 저는 이게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이 “이거 완전 이차희네”라고 말해줬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후 친한 친구가 운영하던 빈티지 숍에서 판매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줬어요. 그때 만든 것들이 대부분 판매됐고, 그 경험이 개인적인 것에서 조금 더 브랜드처럼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딱히 이름도 없었어요. ‘재활용’, ‘자투리’ 같은 표현으로 부르다가, 이후 ‘책방무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요. 그곳을 운영하는 요조님께서 책방무사에서도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러려면 ‘이름이 필요하겠다’,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보풀’과 ‘보푸리’ 중에 고민했는데, 요조님이 '무조건 보풀'이라고 추천해주셔서 이름을 짓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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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의 작업은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원했던 건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안 입는 옷을 받아서 그것을 탈바꿈해 다시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순환의 방식이었어요. 저 역시 입지 않는 옷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옷이 다시 다른 형태가 되어 돌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어요. ‘책방무사’에서도 안 쓰는 천가방을 받아 종이백 대신 쓰고 있었기에, 판매라기보다는 안 입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리고 그 옷을 바꾸어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옷을 보내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받았다고요.

옷을 왜 안 입게 되었는지 이유를 써달라고 했더니 정말 다양했어요. 저는 단순히 ‘더 이상 취향이 아니라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같은 이유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겨자색 치마를 버리지 못했던 것처럼, ‘그 옷을 너무 좋아했지만 이제는 잘 보내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소중한 마음들이 제가 바란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다양한 분들과 워크숍도 진행해오셨는데요. 워크숍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안 입는 옷으로 가방을 만들면 자투리가 생기잖아요. 저는 색이 예쁘거나 재질이 특이하면 잘 못 버려요. 사실 그렇지 않아도 사실 잘 못 버리고요. (웃음) 그렇게 자투리를 아무 계획 없이 모았는데, 어느 날 바구니가 넘칠 정도가 된 거예요.

자투리를 담을 다른 바구니를 당근으로 사러 갔다 오면서 ‘내가 이걸 왜 모으지? 내가 이렇게 계획 없이 모으는 게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내가 이걸 혼자 처리하려고 하니까 못하는 거구나. 누군가랑 같이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때도 혼자서는 자투리로 이것저것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이런 걸 해보려고 하는데 관심 있는 사람이 있냐'고 올렸고,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줬어요. 그렇게 자투리 워크숍이 시작됐어요.


워크숍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배운 것이 있나요?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제 성향상 힘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한 번도 크게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한 번은 오랫동안 디자인을 같이 해온 팀장님이 워크숍에 오신 적이 있어요. 그분은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을 계속 살피면서 신경 쓰고 있었는데, 정작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워크숍을 통해 배운 건지, 아니면 제가 그 시기에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워크숍을 할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누군가를 대할 때 너무 힘주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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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양과 색의 옷감으로 만들어내는 보풀의 시그니처 작업, '자투리 콤포지션'


이번 전시의 주제인 ‘콤포지션’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콤포지션(Composition)은 '구성'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도 그렇고, 어떤 하나의 덩어리는 결국 조각들로 구성되는 거잖아요. 그 구성이 엄청나게 조화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주제로 꼭 뭉치지 않아도 되고요. 자투리 콤포지션 워크숍을 할 때도 항상 “지금 느낌 가는 대로 구성해보라”고 말해요. 꼭 멋지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배치해보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콤포지션’이란, 말 그대로 조각들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보풀의 콤포지션’이라면, 안 입는 옷을 사용한다는 점이 중요해요. 일반 원단은 처음부터 사각형으로 모양이 정해져 있지만, 안 입는 옷을 재료로 사용하면 처음부터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조각들에서 출발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더 다양한 구성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풀’의 활동에서는 천을 주로 다뤄왔지만 원래는 책을 디자인하는 일도 하고 계시잖아요. 책이든, 종이든, 조각들을 모아 구성하는 방식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예전에는 버려지는 종이로 노트를 만들기도 했고, 이번에도 종이로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는데요. 결국 조각들을 모아서 뭔가를 구성해내는 방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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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배다리에 머물고 스며드는 시간을 함께 가졌는데요. 배다리를 경험하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배다리에 다녀온 뒤 주변에 배다리 자랑을 엄청 했어요. 제 동네도 아닌데 자랑하고 싶더라고요. 배다리를 매력적으로 느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보풀과 닮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제 취향이고, 나와 닮았다는 느낌에서 오는 매력이 있었어요. 보풀을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보풀은 정말 투박하거든요. 저는 정제되지 않은 투박함이 너무 좋아요. 배다리의 오래된 건물에서 보이는 녹슨 부분, 까진 부분,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며 여러 가지 질감을 만들어낸다고 느꼈어요.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이 여전히 함께 존재한다는 게 좋았어요. 요즘에는 많은 곳이 계획을 가지고 지역을 구성하기도 하고, 건물 역시 정형화된 경우가 많잖아요. 배다리는 높낮이도 다르고, 각도도 다르고, 여기저기에 세워진 건물들이 하나의 선과 리듬을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색도 과감하게 여러 가지가 섞여 있고요. 어떻게 보면 질서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저는 그 질서 없음에서 오는 날것의 생생함을 좋아해요. 무질서함이 주는 생동감과 인간미가 배다리의 매력이라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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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지역 곳곳을 경험하고 있는 보풀의 모습과 보풀의 시선으로 담은 배다리의 풍경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을 많이 했나요?

올해부터 해보지 않았던 일의 기회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어요. 어느 카페 겸 베이커리에서 큰 작업이 들어오기도 했고, 한 브랜드의 일본 팝업 스토어 구성을 맡았던 일도 있었어요.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냥 가방만 만들어 보여주는 전시였다면 덜 어려웠을 텐데, 이번에는 하나의 방을 꾸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고, ‘콤포지션’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도 계속 생각해야 했어요.

그런데 ‘콤포지션 룸’이라고 정하고 나서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지역과 연결된 작업이다보니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었는데요. 지난 번 해리님이 “꼭 배다리라는 주제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이미 보풀이 배다리와 연결점이 있는 사람이니 그냥 작가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는 말을 해주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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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해보니 제가 제 삶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콤포지션적’이더라고요. 수많은 조각들이 지금의 나, 보풀을 형성해왔는데 그 조각들을 한번 모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고, 배다리도 그렇고, 어떤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잖아요. 배다리에 다녀와서 처음에는 “이 방대한 매력을 어떻게 담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제가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해서 사람들이 한 문장으로 감상을 끝내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죠. 조각들은 조각대로 느끼고, 읽을 것들은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나의 일부인데?’, ‘이것도 나의 조각인데?’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콤포지션’할 수 있더라고요. 욕심나서 열심히 작업했던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이 이번 전시에 오면 좋을까요?

보풀에 대해 말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오래된 것을 새롭게 보는 힘을 기르고 있다’고 소개하거든요.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것, 너무나 새로운 것들이 계속 나오는 것에 지친 분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오면 좋겠어요. 오래된 것을 그대로 취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어떻게 내 시각으로 한 번 더 새롭게 볼 수 있을지에 관심 있는 분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요. 이번 전시에는 저에게 영향을 줬던 책들, 제가 좋아하는 CD와 DVD 같은 것들도 추려서 함께 보여주고 싶어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와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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