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매터랩스는 기존 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경제와 사회 모델을 실험하는 글로벌 랩입니다. 현대 사회가 처한 위기를 '잘못 짜여진 코드'로 바라보고 이를 재설계하는 프로젝트들을 제안하고 실행합니다. 돈이나 땅, 기술과 인간,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실험하며 생명을 살리는 경제로의 전환을 제안하죠. 다크매터랩스의 멤버들은 전세계에 흩어져서 일하지만 공통의 아젠다를 기반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배운 것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합니다. 올해 패치워크는 다크매터랩스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도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다크매터랩스의 유일한 아시아 지부, 다크매터랩스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강은지 디자이너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다크매터랩스라는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 정말 흥미로워요. 대표님 첫 커리어는 출판사였다고 들었는데요. 다크매터랩스(이하 DML)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는 원래 현대미술, 그 중에서도 개념미술을 전공했어요. 책 읽는 걸 좋아하다보니 ‘출판사에 들어가면 책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디자이너로 지원을 했어요. 거기에서 처음으로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죠. 처음 2년 반 정도는 포토샵이나 인디자인 등의 디자인 툴을 배웠고, 그러다가 소셜 디자인 분야의 책을 보게 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 후 런던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공부했던 곳이 조금 특별했어요. ‘디자인의 역할’을 질문하는 그런 곳이었거든요. 제가 원래 미술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역사적으로 미술의 역할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어왔던 것처럼, 이제는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니까 ‘무엇을 디자인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진 것 같아요. 그 학교가 그런 질문을 하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디자인 실천에서의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in Design Practice)’라는 과에서 공부했어요. 첫 학기부터 ‘디자이너라면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아야 한다. 네가 만드는 모든 것은 환경의 쓰레기가 될텐데 왜 디자인을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디자인과 환경(Design&Environment), 디자인과 사회적 전환(Design&Social Transition), 디자인과 돌봄(Design&Care)… 이런 식으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에서의 디자인의 역할과 가능성들을 접근하는 학교였어요. 이론적 탐구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물질적인 것을 설계하기보다 비물질적인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시스템 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고요. 그때 만났던 인디 조하(Indy Johar)가 같이 일해보자고 해서 다크매터랩스(DML)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크매터랩스에서 일하는 다양한 문화권의 동료들. 사진 출처 다크매터랩스.
DML은 조금 특이한 조직이에요. 전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협력해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어요. 지금도 전세계에서 동료들과 원격으로 일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일하나요?
DML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축적되는 학습 구조(Compounding Learning Infrastructure)’예요. 지금은 시즌 4의 단계에 와 있고요. 처음 회사를 세웠던 시즌 1에서는 조직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기 위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조사(Narrative Research)를 많이 했어요. 시즌 2에서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보기 위한 프로덕트 개발을 진행했고요.
시즌 3의 단계에서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유럽의 100개 도시를 ‘탄소 중립 도시(Net-Zero City)’로 전환시키는 거대한 아젠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요. 조직의 반 정도 되는 동료들이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도시들의 전환 포트폴리오 로직을 설계해주는 일들을 진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죠. 그러면서 굵직굵직한 프로덕트 개발도 진행했고요.
시즌 4에 와서는 파트너와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고요. 공동 학습 구조를 만들기 위한 세팅에 엄청나게 투자를 하고 있어요. 저희가 다 분산되어서 일하고 있고 오피스도 없거든요. 각자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디지털로 지식을 함께 축적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잘하냐 못하냐보다 의미 있는 학습 데이터를 만들었느냐, 이것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가 저희 조직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한 KPI예요.
지금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활동하고 계신데요. 유일한 아시아 지사이기도 합니다. 어떤 차이를 느끼고 계신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캐나다에서도 프로젝트를 하고, 스웨덴에서도 프로젝트를 하고, 그러다 보니 각 나라에 법인(Entity)를 세우는 과정을 함께 했는데요. 그러다가 제가 팬데믹 이전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오갈 수 없게 되면서 다크매터랩스 코리아를 세우고 활동을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아시아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건 유럽하고 너무 달라서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힘들었죠. 사람들이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배운 학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어려웠고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안에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몇 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서양은 상대적으로 ‘의지’가 더 중요한 문화라고 느껴요. 누군가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자유롭게 그걸 하면 되는 문화예요. 반면 한국은 무언가를 빠르게 증명해야 하는 문화,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눈치보는 문화가 있고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중요하죠. 역사적으로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했고, 장기적인 시스템 전환을 이야기하기보다 당장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너무 중요했던 환경이기도 했고요.
또 서양의 경우에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공익 활동)’가 활발해요. 한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익 활동이 진행되는 편이지만 서양은 국가뿐 아니라 재단 사업도 있고 굉장히 다양해요. 그래서 (공공 활동가가) 자신의 비전에 맞는 자원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필란트로피라는 개념도 익숙하지 않죠. 그래서 한동안은 아시아에서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축적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 시간이 괴로웠지만 동시에 ‘이건 내가 만든 것’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아시아에 있는 친구들 중에 저처럼 이상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부모님의 헌신으로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해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한국에서 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애국심은 버리고 나만 생각하고 싶기도 한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렇지만 다들 이 땅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나의 힘으로, 나의 경험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게 정말 의미 있어요.
2020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을 만들어 오셨어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Bloomberg Mayors Challenge’(블룸버그 자선재단(Bloomberg Philanthropies)이 전 세계 도시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혁신 공모 프로그램)로 대구광역시와 함께 진행한 ‘Re:Permissioning the City’라는 프로젝트인데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이 블룸버그 자선재단(Bloomberg Philanthropies)에 계신데, 그 분에게 메일을 받았어요. 한국에서 한번 해 보라고요. 그때 저희가 대구광역시랑 일하고 있었고 ‘일시적 허가(Temporary Licensing)’라는 개념으로 도시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DML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오너십(Ownership)’이라는 개념이거든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기본적으로 ‘자산 소유권(Property Ownership)’의 문제에서 온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집을 하나 샀다고 가정할게요. 그런데 그 집을 사정상 몇 년 동안 비워 뒀어요. 누군가가 거기에 와서 쓰레기도 버리고 온갖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하지만 행정적으로는 이곳이 누군가의 개인 소유 공간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땅에 대한 권리를 경계를 치고 ‘이것은 누군가의 소유다’라고 말하지만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땅은 사람뿐 아니라 새들도, 길고양이들도 와서 쉬어가는 곳인데 인간만이 이 지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관점으로 우리의 경제 모델과 시스템을 재설계하면 지금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게 저희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예요. 이 ‘오너십(Ownership)’이라는 주제에서 파생되어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고 ‘Re:Permissioning the City’도 그런 관점에서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였어요.

대구광역시와 함께 실험적으로 시작한 ‘Re:Permissioning the City’ 프로젝트는 약 3년 동안 연구와 작은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프로젝트들을 진행하셨고 무엇을 발견하셨는지, 이후로 어떤 것을 해보고 싶어졌을지 궁금해요.
도시의 빈 공간들을 플랫폼에 등록해봤는데요. 공간마다 모양도, 규칙도 다 다르잖아요. 그걸 다 정리해보니 대화를 기반으로 인터페이스를 짜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함께 하고자 할 때 규칙에 대해 먼저 구구절절 다 읽지 않거든요. 약속을 정할 때만 해도 ‘금요일에 뭐 해?’, ‘시간 돼?’ 하고 물어보고 그 후에 조율해야 할 게 있으면 자기 규칙(다이어리나 스케줄러)를 열어보고 세부적인 것을 조율하잖아요.
일반적인 공간 플랫폼에서는 공간의 사이즈, 이용 시간과 같은 규칙이 먼저 나오는데 그 자체가 상상력을 제한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간이 가지고 있는 비정형적인 캐릭터와 문화적 경험들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공간에 대한 규칙을 실시간으로 서로 합의하는 워크숍을 진행해보기도 했어요. 특정 공간에서 콘서트를 기획해서 일부러 뮤지션이 소리를 크게 내거나 작게 내는 등의 변주를 주고 관객이 여기에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규칙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 해봤는데 정말 재밌었죠. 피드백을 줄 때 주최자에게 익명으로 주는 것이 좋을지, 이 콘서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등을 실험했는데 이걸 더 발전시켜보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실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인천, 용인, 전남을 아우르는 초광역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이 과정을 패치워크가 함께 하고 있고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실험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 개념에 대한 부분이고 또 하나는 도시 공간을 함께 돌보고 관리하는 ‘돌봄이 계약(stewardship contract)’이에요. 인간만 결정의 권한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강, 나무와 같은 존재들도 결정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함께 실험하는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고요.
그런데 한국은 특히 공간의 주인과 공간을 빌리는 사람이 분명하게 경계가 나뉘어져 있다보니 ‘왜 내 공간을 다른 사람과 같이 관리하고 공유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점차 내 공간을 도시 생태계의 일부로서 인식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공간이 내 소유라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활용하지 않기보다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하는 주체들이 많아지는 것, 이 공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어떤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이 공간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보는 과정을 제안하고 싶어요.

이미지 출처 | https://bloombergcities.jhu.edu/news/city-putting-its-people-charge-public-space
저희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도시 문제들을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요. DML에서 바라보는 도시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의사결정구조의 혁신(Governance Innov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해요.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의사결정구조(Community driven governance)’를 제안하고 싶어요. 저희는 도시 문제를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를 하는데요. 첫번째는 ‘안 쓰는 공간을 어떻게 쓰게 만들 수 있을까’예요. 빈 공간(Vacancy)을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예요. 한국은 주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요.
두번째는 도시 계획 자체가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루어지잖아요.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시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사라지는 ‘팝업(Pop-up)’, 즉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허가들이 최근 도시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팬데믹이 지난 후 팝업 연계 비즈니스가 미국 같은 경우는 150%가 늘어났고 유럽도 같아요. 도시가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도시를 쓸 수 있는 방식이 없어졌고, 그래서 팝업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실험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진거죠.
이 방식이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만 도시계획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욕구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하면 없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는 정말 다양해지고 있는데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허가 모델이 부재하다는 생각이에요. 그걸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도시들은 도시계획의 영역에서도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계획 자체가 달라져야 경제적인 기회들도 생겨나는 거니까요.
세번째는 영어로는 ‘Synthetic Asset Creation’이라고 하는데 한국말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 부숴버리고 뭔가를 새롭게 짓는 게 아니라 흩어져 있는 것들을 묶어 하나의 자산이 되는 개념이에요. 이런 개념을 적용한 시도이 도시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잘 엮어내는 것이 비즈니스 트렌드예요. 흩어져 있는 것들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큰 규모의 협력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고 계신데요. 마지막으로 이 일들을 어떤 태도로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저희를 이해하지 못했던 분들이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 있어요. 저희가 말하고 있는 구조적인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변화를 보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요. 그 과정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화내지 않고요. 이상한 거 많이 하고요. (웃음)
다크매터랩스는 기존 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경제와 사회 모델을 실험하는 글로벌 랩입니다. 현대 사회가 처한 위기를 '잘못 짜여진 코드'로 바라보고 이를 재설계하는 프로젝트들을 제안하고 실행합니다. 돈이나 땅, 기술과 인간,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실험하며 생명을 살리는 경제로의 전환을 제안하죠. 다크매터랩스의 멤버들은 전세계에 흩어져서 일하지만 공통의 아젠다를 기반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배운 것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합니다. 올해 패치워크는 다크매터랩스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도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다크매터랩스의 유일한 아시아 지부, 다크매터랩스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강은지 디자이너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다크매터랩스라는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 정말 흥미로워요. 대표님 첫 커리어는 출판사였다고 들었는데요. 다크매터랩스(이하 DML)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는 원래 현대미술, 그 중에서도 개념미술을 전공했어요. 책 읽는 걸 좋아하다보니 ‘출판사에 들어가면 책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디자이너로 지원을 했어요. 거기에서 처음으로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죠. 처음 2년 반 정도는 포토샵이나 인디자인 등의 디자인 툴을 배웠고, 그러다가 소셜 디자인 분야의 책을 보게 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 후 런던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공부했던 곳이 조금 특별했어요. ‘디자인의 역할’을 질문하는 그런 곳이었거든요. 제가 원래 미술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역사적으로 미술의 역할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어왔던 것처럼, 이제는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니까 ‘무엇을 디자인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진 것 같아요. 그 학교가 그런 질문을 하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디자인 실천에서의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in Design Practice)’라는 과에서 공부했어요. 첫 학기부터 ‘디자이너라면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아야 한다. 네가 만드는 모든 것은 환경의 쓰레기가 될텐데 왜 디자인을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디자인과 환경(Design&Environment), 디자인과 사회적 전환(Design&Social Transition), 디자인과 돌봄(Design&Care)… 이런 식으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에서의 디자인의 역할과 가능성들을 접근하는 학교였어요. 이론적 탐구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물질적인 것을 설계하기보다 비물질적인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시스템 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고요. 그때 만났던 인디 조하(Indy Johar)가 같이 일해보자고 해서 다크매터랩스(DML)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크매터랩스에서 일하는 다양한 문화권의 동료들. 사진 출처 다크매터랩스.
DML은 조금 특이한 조직이에요. 전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협력해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어요. 지금도 전세계에서 동료들과 원격으로 일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일하나요?
DML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축적되는 학습 구조(Compounding Learning Infrastructure)’예요. 지금은 시즌 4의 단계에 와 있고요. 처음 회사를 세웠던 시즌 1에서는 조직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기 위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조사(Narrative Research)를 많이 했어요. 시즌 2에서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보기 위한 프로덕트 개발을 진행했고요.
시즌 3의 단계에서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유럽의 100개 도시를 ‘탄소 중립 도시(Net-Zero City)’로 전환시키는 거대한 아젠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요. 조직의 반 정도 되는 동료들이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도시들의 전환 포트폴리오 로직을 설계해주는 일들을 진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죠. 그러면서 굵직굵직한 프로덕트 개발도 진행했고요.
시즌 4에 와서는 파트너와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고요. 공동 학습 구조를 만들기 위한 세팅에 엄청나게 투자를 하고 있어요. 저희가 다 분산되어서 일하고 있고 오피스도 없거든요. 각자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디지털로 지식을 함께 축적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잘하냐 못하냐보다 의미 있는 학습 데이터를 만들었느냐, 이것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가 저희 조직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한 KPI예요.
지금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활동하고 계신데요. 유일한 아시아 지사이기도 합니다. 어떤 차이를 느끼고 계신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캐나다에서도 프로젝트를 하고, 스웨덴에서도 프로젝트를 하고, 그러다 보니 각 나라에 법인(Entity)를 세우는 과정을 함께 했는데요. 그러다가 제가 팬데믹 이전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오갈 수 없게 되면서 다크매터랩스 코리아를 세우고 활동을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아시아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건 유럽하고 너무 달라서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힘들었죠. 사람들이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배운 학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어려웠고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안에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몇 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서양은 상대적으로 ‘의지’가 더 중요한 문화라고 느껴요. 누군가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자유롭게 그걸 하면 되는 문화예요. 반면 한국은 무언가를 빠르게 증명해야 하는 문화,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눈치보는 문화가 있고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중요하죠. 역사적으로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했고, 장기적인 시스템 전환을 이야기하기보다 당장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너무 중요했던 환경이기도 했고요.
또 서양의 경우에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공익 활동)’가 활발해요. 한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익 활동이 진행되는 편이지만 서양은 국가뿐 아니라 재단 사업도 있고 굉장히 다양해요. 그래서 (공공 활동가가) 자신의 비전에 맞는 자원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필란트로피라는 개념도 익숙하지 않죠. 그래서 한동안은 아시아에서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축적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 시간이 괴로웠지만 동시에 ‘이건 내가 만든 것’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아시아에 있는 친구들 중에 저처럼 이상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부모님의 헌신으로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해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한국에서 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애국심은 버리고 나만 생각하고 싶기도 한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렇지만 다들 이 땅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나의 힘으로, 나의 경험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게 정말 의미 있어요.
2020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을 만들어 오셨어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Bloomberg Mayors Challenge’(블룸버그 자선재단(Bloomberg Philanthropies)이 전 세계 도시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혁신 공모 프로그램)로 대구광역시와 함께 진행한 ‘Re:Permissioning the City’라는 프로젝트인데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이 블룸버그 자선재단(Bloomberg Philanthropies)에 계신데, 그 분에게 메일을 받았어요. 한국에서 한번 해 보라고요. 그때 저희가 대구광역시랑 일하고 있었고 ‘일시적 허가(Temporary Licensing)’라는 개념으로 도시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DML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오너십(Ownership)’이라는 개념이거든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기본적으로 ‘자산 소유권(Property Ownership)’의 문제에서 온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집을 하나 샀다고 가정할게요. 그런데 그 집을 사정상 몇 년 동안 비워 뒀어요. 누군가가 거기에 와서 쓰레기도 버리고 온갖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하지만 행정적으로는 이곳이 누군가의 개인 소유 공간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땅에 대한 권리를 경계를 치고 ‘이것은 누군가의 소유다’라고 말하지만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땅은 사람뿐 아니라 새들도, 길고양이들도 와서 쉬어가는 곳인데 인간만이 이 지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관점으로 우리의 경제 모델과 시스템을 재설계하면 지금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게 저희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예요. 이 ‘오너십(Ownership)’이라는 주제에서 파생되어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고 ‘Re:Permissioning the City’도 그런 관점에서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였어요.
대구광역시와 함께 실험적으로 시작한 ‘Re:Permissioning the City’ 프로젝트는 약 3년 동안 연구와 작은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프로젝트들을 진행하셨고 무엇을 발견하셨는지, 이후로 어떤 것을 해보고 싶어졌을지 궁금해요.
도시의 빈 공간들을 플랫폼에 등록해봤는데요. 공간마다 모양도, 규칙도 다 다르잖아요. 그걸 다 정리해보니 대화를 기반으로 인터페이스를 짜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함께 하고자 할 때 규칙에 대해 먼저 구구절절 다 읽지 않거든요. 약속을 정할 때만 해도 ‘금요일에 뭐 해?’, ‘시간 돼?’ 하고 물어보고 그 후에 조율해야 할 게 있으면 자기 규칙(다이어리나 스케줄러)를 열어보고 세부적인 것을 조율하잖아요.
일반적인 공간 플랫폼에서는 공간의 사이즈, 이용 시간과 같은 규칙이 먼저 나오는데 그 자체가 상상력을 제한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간이 가지고 있는 비정형적인 캐릭터와 문화적 경험들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공간에 대한 규칙을 실시간으로 서로 합의하는 워크숍을 진행해보기도 했어요. 특정 공간에서 콘서트를 기획해서 일부러 뮤지션이 소리를 크게 내거나 작게 내는 등의 변주를 주고 관객이 여기에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규칙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 해봤는데 정말 재밌었죠. 피드백을 줄 때 주최자에게 익명으로 주는 것이 좋을지, 이 콘서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등을 실험했는데 이걸 더 발전시켜보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실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인천, 용인, 전남을 아우르는 초광역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이 과정을 패치워크가 함께 하고 있고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실험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 개념에 대한 부분이고 또 하나는 도시 공간을 함께 돌보고 관리하는 ‘돌봄이 계약(stewardship contract)’이에요. 인간만 결정의 권한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강, 나무와 같은 존재들도 결정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함께 실험하는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고요.
그런데 한국은 특히 공간의 주인과 공간을 빌리는 사람이 분명하게 경계가 나뉘어져 있다보니 ‘왜 내 공간을 다른 사람과 같이 관리하고 공유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점차 내 공간을 도시 생태계의 일부로서 인식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공간이 내 소유라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활용하지 않기보다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하는 주체들이 많아지는 것, 이 공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어떤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이 공간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보는 과정을 제안하고 싶어요.
이미지 출처 | https://bloombergcities.jhu.edu/news/city-putting-its-people-charge-public-space
저희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도시 문제들을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요. DML에서 바라보는 도시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의사결정구조의 혁신(Governance Innov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해요.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의사결정구조(Community driven governance)’를 제안하고 싶어요. 저희는 도시 문제를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를 하는데요. 첫번째는 ‘안 쓰는 공간을 어떻게 쓰게 만들 수 있을까’예요. 빈 공간(Vacancy)을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예요. 한국은 주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요.
두번째는 도시 계획 자체가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루어지잖아요.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시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사라지는 ‘팝업(Pop-up)’, 즉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허가들이 최근 도시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팬데믹이 지난 후 팝업 연계 비즈니스가 미국 같은 경우는 150%가 늘어났고 유럽도 같아요. 도시가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도시를 쓸 수 있는 방식이 없어졌고, 그래서 팝업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실험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진거죠.
이 방식이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만 도시계획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욕구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하면 없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는 정말 다양해지고 있는데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허가 모델이 부재하다는 생각이에요. 그걸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도시들은 도시계획의 영역에서도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계획 자체가 달라져야 경제적인 기회들도 생겨나는 거니까요.
세번째는 영어로는 ‘Synthetic Asset Creation’이라고 하는데 한국말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 부숴버리고 뭔가를 새롭게 짓는 게 아니라 흩어져 있는 것들을 묶어 하나의 자산이 되는 개념이에요. 이런 개념을 적용한 시도이 도시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잘 엮어내는 것이 비즈니스 트렌드예요. 흩어져 있는 것들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큰 규모의 협력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고 계신데요. 마지막으로 이 일들을 어떤 태도로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저희를 이해하지 못했던 분들이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 있어요. 저희가 말하고 있는 구조적인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변화를 보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요. 그 과정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화내지 않고요. 이상한 거 많이 하고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