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실험 이야기]동네에 이미 있던 것들을 연결해 도시에 없던 재미 만들기

패치워크는 지난 몇년 동안 동인천 배다리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인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다들 우리처럼 헤매고, 삽질하고, 우당탕탕 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꿈꾸며 해나가고 있겠지?' 서로의 실험담을, 과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테스트 로컬 컨퍼런스>를 기획했습니다. 건축, 공공예술, 커뮤니티, 브랜드, 축제 등의 키워드로 내 곁의 일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특별한 현장이었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일 실험가들이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해 봅니다.


두번째 일 실험가, 이종범 (인천 스펙타클 대표)

인천 기반 로컬 콘텐츠 기획자로서 남들이 모르는 인천의 즐거움을 디깅하고, 점으로 흩어진 매력적인 이웃들을 연결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한 수단으로 필요에 따라 매거진, 커뮤니티, 축제, 전시, 탐방, 굿즈 등을 만듭니다.




동네에 이미 있던 것들을 연결해
도시에 없던 재미 만들기


인천 로컬 가게와 브랜드를 모은 마켓, 동네 이웃들이 함께 만드는 로컬 매거진, 학업은 모르겠고 인천 곳곳을 열심히 누비고 노는 이상한 대학, y2k 부평과 두근두근 마계인천, 동구르르 동구산책. '스펙타클'한 시각으로 인천의 즐거움을 엮어온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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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나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저희는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 합니다’라는 모토로, 인천 전역을 배경으로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굉장히 다양해요. 지역 마켓을 기획하기도 하고, 로컬 매거진을 제작하거나 모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경기도에 살면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일하러 갈 때 뿐만 아니라 인천 사람끼리도 약속을 잡을 땐 서울에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루로 치면 서너 시간이지만 쌓이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잖아요. 점차 '서울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한 도시나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첫번째, 취향에 맞는 공간
로컬의 장소와 이벤트를 스펙타클의 관점에서 소개하기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왜 자꾸 서울로 가는지 생각해보니, 자기 취향에 맞는 공간이 서울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정말 인천에는 내 취향에 맞는 공간이 없는 건지, 혹시 있는데 잘 모르는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만약 있는데 모르는 거라면 찾아보고 공유하면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제 취향의 공간들을 공유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게 제 활동의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발견한 로컬의 장소와 이벤트를 스펙타클의 관점에서 소개했습니다. 그동안 인천을 소개하는 콘텐츠는 차이나타운이나 인천공항처럼 동네 사람은 잘 가지 않는 곳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외지인의 시선에서 인천을 소개하는 거죠. 진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로컬 콘텐츠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음식이 인천에 상륙했다는 방식의 소개가 주를 이뤘어요. 인천만의 고유한 즐거움을 알려주는 로컬 콘텐츠가 없었던 거예요. 스펙타클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공감하고 영감을 얻는 인천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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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마계인천'이라는 말을 활용해서 '마계 사진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타지 사람들이 부를 땐 오명이기도 하지만, 인천 사람들끼리 그런 얘기를 하는 건 건강하게 지역을 얘기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100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지는 걸 보면서 이러한 공감의 장이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컬의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기도 했어요. 100여 년 전에는 인천 평양냉면이 유명해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배달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동인천에서 명동까지 냉면을 배달해보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인천의 고유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2017년에는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본 프로젝트였죠. 당시만 해도 인천에는 개성 있는 문화 공간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지역을 대표할 만한 공간이 카페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인천, 송도, 강화 등 인천 곳곳의 카페 30곳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주변에서는 '블로그에 다 있는데, 그걸 누가 돈 주고 사냐'고들 했지만, 300명에 가까운 분들이 펀딩을 해주셨어요. 이 경험을 통해 인천에서도 제주나 서울처럼 자기만의 취향이 담긴 공간을 찾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원하는 일을 할 일터
로컬 창작자를 위한 공간부터 로컬 브랜드 마켓까지

인천에는 300만 명이라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만큼, 재미있는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서울의 유명한 페어나 페스티벌에서 주로 활동하시지만, 정작 인천에서는 그분들을 보기 힘들더라고요. 왜 인천 창작자들은 인천에서 활동하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한 도시나 동네에서 살려면 좋은 카페나 공간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창작자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첫 번째 시도로 '예술반점 길림성'이란 공간을 운영했던 적이 있어요. 철거 예정인 중국집을 1년간 무상 임대해서 만든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주거나 공장단지가 많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예술을 친숙하게 즐길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했어요. 짜장면을 먹으면서 작가와의 대화를 나누거나, 슬라임 액체괴물로 전시 굿즈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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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가좌동의 폐공장 단지를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코스모 40 프로젝트에 초기에 참여했었는데요. 코스모 40이 완공된 후, 판을 키워 인천에서 활동하는 로컬 브랜드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50팀를 모아 코스모의 개관 행사로 마켓을 열었습니다. SNS를 팔로우 하고 있었지만 인천 브랜드인지 몰랐다는 반응들이 이어졌어요.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브랜드들끼리도 서로 교류하는 경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켓과 더불어 공연이나 토크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는데요. 창작자 중 한 분이 '물건을 파는 것보다도 평소에 되게 좋아하지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이 가장 좋다. 일종의 인천 브랜드들의 명절 같다'고 해주신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어떤 일터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는데요. 돈을 버는 기반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부둣가에 있던 곡물 창고를 리뉴얼한 '상상플랫폼'에서, 더 큰 규모의 마켓을 진행하고 있어요. 부대행사를 줄이더라도 꼭 지키려는 원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참여 팀들을 위한 네트워킹 시간을 마련하는 거예요. 서로 친해지면서 협업을 하고 로컬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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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인천 스펙타클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창작자들>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책을 내기도 했는데요. 인천을 창작의 거점으로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 지를 탐구해보고 싶었습니다. 인천에서 평일을 보내는 13팀의 젊은 로컬 창작자들을 만났어요. 이들과 로컬 굿즈를 만들면서 크고 작은 협업을 이어가기도 하고, 마켓과 연계해 창작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접점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세번째. 마음을 나눌 좋은 동료와 이웃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 인처너들과 만들어 간 커뮤니티

내가 10년 뒤에도 이 도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는 것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옆집 사람도 잘 모르는 시대가 되었죠. 나와 비슷한 취향의 이웃들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활동이 바로 '스펙타클 유니버시티'입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로컬 커뮤니티 프로그램인데요, 이름은 유니버시티지만 사실 대학처럼 거창한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울리며 즐기는 모임이에요. 프로그램별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인천에 있는 좋은 장소들을 많이 소개하고 함께 다녀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보통 한 기수 당 12주에서 16주 동안 운영하고 유료로 진행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혼자 가기 망설여지는 공간들을 같이 가는데요. 예를 들어, 인천에 있는 독립 극장들을 방문하기도 하고요. 차이나타운 외에도 아랍인이나 중앙아시아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탐방하기도 합니다. 스포츠 직관, 공원에서 보물찾기 등 다양한 현지 활동을 함께 즐기면서 매주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일하면서 관계 맺은 로컬 브랜드들을 프로그램의 호스트로 모시기도 했는데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를 7기까지 진행하다보니 재밌는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참가자 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호스트로 참여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유치원 선생님이 플로깅 프로그램을 제안해 정기 프로그램이 되었고, 박물관에서 일하는 분이 자신의 박물관을 투어하는 활동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약 200명 이상의 참가자가 각자 호스트가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외부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강화 유니버스 팀과 협력해 3박 4일 캠프 형식의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 썸머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강화도에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송도에서 열린 힙합 기반의 ‘랩비트 페스티벌’에 인천의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부스를 운영하고, 음악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 랩비트 학과'도 진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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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인천 스펙타클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취향에 맞는 공간에서 좋은 이웃, 동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는 일로까지 확장된 거죠. 그중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스펙타클 매거진'입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재미있는 장소들을 책에 담아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두근두근 마계인천', '시티오브누들', '골라골라 나 같은 집' 등의 책을 발간했고요, 다양한 주제로 인천의 로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들을 눈여겨본 외부 파트너들의 제안을 받아 탐방 프로그램, 매거진 교육 등 다방면의 프로그램을 개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스펙타클 유니버시티에서 작게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더 큰 사업으로 확장되기도 하고요. 공공과 협업해서 만든 외주 프로젝트의 경우 단발적으로 끝나기 아쉬운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그런 프로그램은 더 가볍게 바꾸어 유니버시티를 통해 지속되는 선순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저희 행사의 방문객이 되어주기도 하고, 스태프로 함께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팝업 행사를 열었을 때, 그 공간의 담당자가 유니버시티에 참여했던 분이라 협업을 수월하게 진행한 일이 있었던 등 인연이 외부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펙타클과 상관없이 스스로 모임이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스펙타클을 벗어나서도 관계가 지속되고 확장되는 게 로컬의 진정한 재미이자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결혼을 하면서도 이런 관계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결혼식을 코스모 40에서 진행했는데, 스태프 20명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유니버시티에 참여했던 분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주셔서 결혼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어요. 저도 스펙타클을 통해 경조사까지 함께하는 진정한 의미의 이웃을 만날 수 있었던 거죠.

인천 스펙타클의 공간, 스펙타클타운은 모임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전시를 하기도 하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또 다양한 지역분들과 협업을 하기도 합니다. 배다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관계를 맺게 된 이웃들과 어떤 협업을 진행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려볼게요.  인천 동구는 원도심이라 어른들이 많이 거주하시다보니, 문화프로그램도 인천 노동운동의 역사 같은 프로그램이 주로 운영되곤 했어요. 그외의 동네의 소소한 재미를 더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패치워크, 책방 모도 등 동구에 자리잡은 팀들과 협력해서 ‘동구르르 동구산책’이라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밖에도 서로 모르는 동구의 팀들을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해오고 있어요.


도시의 매력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 또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나 커뮤니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도시는 사람을 따라간다.
- 야마자키 마쓰히로, <포틀랜드 메이커스>중

  

이런 식으로 이웃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들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8년 전보다 지금의 인천이 훨씬 더 흥미로워졌다고 느끼는데요. 이렇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더욱 재미있는 도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도시가 사람을 따라간다는 말처럼  저희 스타일에 맞는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들을 저희의 이웃들과 함께 해나가려고 합니다.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