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아카이브][동네사람 인터뷰] 나누고 모으는 문화기획자, 나비날다책방 청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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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모으는 문화기획자


Q. 마을 활동가, 문화기획자, 책방지기 등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고 계세요. 요즘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고 계신가요?

고양이 집사, 책방지기, 문화기획 조금 하는 사람... 그 정도이지 않을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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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청산별곡이란 예명은 어떻게 짓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본인의 이름을 스스로 짓는 게 아니고 부모님이 붙여주잖아요. 그러다 보니 일단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있을 때 풀씨 이름으로 예명을 짓는 그런 문화가 있었거든요. 근데 꼭 풀씨 이름이어야만 하나,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짓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청산별곡의 문장들이 당시 제 생활, 그리고 심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라 아예 이름으로 삼게 되었어요.


Q. 배다리에 정착하기 이전에도 다양한 공간들을 기획하고 운영해오셨다고 들었어요. 공간은 어떤 계기로, 또 어떤 의도로 기획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할 때는 수익적인 것보다는 잘 놀 수 있는 방식과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것을 쫓는 편이에요. 그리  저는 버려진 낡은 공간을 고쳐서 잘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낡은 공간을 볼 때면 새롭게 해석하고 고쳐 써볼 수 있는 어떤 여지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기분이에요. 보이지 않았던 오래 된 가옥의 상량문을 드러나게 하고, 낡은 시멘트를 걷어내어 벽돌 을 노출시키는 작업을 통해 새 숨을 불어넣는 거예요. 공간에게도 좋은 일일테고 그렇게 공간에 매력을 더해야만 사람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Q. 지금의 동성한의원이 그렇듯 이전부터 청산별곡님이 기획하신 공간은 다양한 분들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어요.

임대료를 해결해야 하는데 기획자인 저 혼자서 아무래도 돈을 벌기 어려우니 운영에 집중하고 필요한 분들에게 공간을 내어드리는 방식을 택한 거죠. 〈요일가게 다괜찮아의 경우에는 요일별로 공간을 써보고 싶은 분들을 모았고, 누구나 입점해 판매할 수 있는 별도의 매대를 만들기도 했어요. 다만, 공간이 위치한 동네가 중심가나 그런 곳은 아니다 보니 부담 없이 공간을 쓸 수 있도록 합리적인 이용료를 책정했고요. 마침 비슷한 시기에 공유 경제가 화제가 되면서 제가 운영하던 공간들도 '공유 공간'으로 주목 받았어요.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유의미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른 공간들도 운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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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간 이야기가 나온 김에〈동성한의원〉과 나비날다책방〉이야기를 해볼게요. 먼저 간단한 공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원래 동성한의원은 소문난 한의원이어서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그런 곳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문을 닫은 이후로는 오랜 기간 공간이 비어 있었고요. 그 흔적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당시의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이 공간에 들어와서 지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공간을 공유하는 개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나비날다책방〉을 직접 운영하기로 했고요. 생태, 환경 관련 서적을 기본으로 다양한 서적을 갖추는 데 집중 했어요.

공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 시기에 따라 제가 배다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 조금씩 바뀌어 나간다는 사실이었어요. 예전에는 이런 역할을 했지만 그 역할을 계속해서 고수할 건 아니고요. 또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죠. 또, 마을에 청년 분들이 새로 들어오니 그분들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Q. 그렇다면〈동성한의원은 새로운 역할이 반영된 공간이겠네요.

네. 그래서 제가 그 시기에 배다리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생각이 많았고, 그 생각을 책방에 담아냈어요. 넉넉한 수의 출판물을 갖춰 둔 공간,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열린 공간, 그런 공간을 운영하는 게 당분간 마을에서 제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조금 더 확장해서 보자면 마을의 빈 곳을 채우는 역할이 제 역할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마을에 없어서 불편한 그런 것을 살피는 기획자가 되어야겠다. 그러니까 제가 마을에 들어올 때도 '저는 이런 달란트가 있고 이런 것을 잘하는데 혹시 이런 사람이 필요할까요' 마을 분들께 여쭤봤었고, 수락을 받은 다음 마을에서 이런 역할을 하고 싶다 생각하며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래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기획하며 움직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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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문객이나 공간을 공유하는 창작자분들이 이렇게 공간을 누렸으면 좋겠다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요?

공간에 사람을 불러모을 때는 무엇보다 공간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모양새를 갖추는 거죠. 그런 다음 공간에서 누군가가 이런 걸 해봤으면 좋겠다, 저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눠요. 말을 건네고, 의견을 나눠보고, 같이 해보자. 그런 공감을 전제로 하면 모든 걸 동일하게 나누는 N분의 1이 아닌, 형편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주고 받는 공유가 이뤄질 수 있어요.



모두가 함께 누리는 마을 문화


Q. 공간을 운영하는 동시에 문화기획자로서 다양한 기획을 해오셨고 또 만들어 가고 계세요.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배다리에서 밭캉스를 했던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제법 고생했지만, 많은 분들이 즐거워하셔서 좋았거든요.


Q. 밭캉스는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지금 산업도로 터널 공사장 자리가 원래는 넓은 풀밭이 있고, 마을 주차장과 텃밭으로도 쓰이던 공지였잖아요. 제가 배다리에 정착한 초창기에 그곳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서울에서 음악하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공연을 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면 마을 분들이 밤에 찐감자를 들고 나오셔서는 함께 영화를 보 기도 하고, 풀장을 설치해서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놀기도 했죠.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앞집에서 전기를 끌어올 수 있게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동네에 카페가 없다보니 커피를 하던 지인들이 생두를 챙겨와서는 그 자리에서 콩을 볶아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어요. 수제 맥주를 함께 만들어보기도 하고, 얼음 위에발을 올려놓고 8월 무더운 여름밤을 나기도 했죠. 2014년부터 대략 3년 조금 넘게 이어갔던 걸로 기억해요.


Q. 한창 진행 중인 산업도로 터널 공사가 마무리되고 난 다음 해당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재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다양한 욕구가 있다 보니 각자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꿈꾸는 미래 모습이 다른 거겠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배다리 어디에 풀과 꽃이 자라는 넓은 공터가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완공 이후에 도 오히려 그런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거고, 그 공터에서 이전처럼 다양한 기획을 자유로이 해볼 수 있었으면 하죠. 반면, 마을 구성원 모두가 그런 활동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는 시끄럽다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공사 중인 지금이 가장 평화로운 측면도 있는데 (웃음) 공사가 끝날 쯤에는 관련해서 또 다양한 의견이 오가게 될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일방적이거나 지나치게 개발 위주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추진하기 보다는 마을을 위한 좋은 결정이 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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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청산별곡님에게 배다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무언가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는 곳이죠. 그리고 헌책방이 이렇게나 많고, 멋진 갤러리가 있고, 다양한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잖아요. 주민 분들이 누릴 만한 다양한 것들이 있는 이런 마을은 결코 흔하지 않거든요. 물론 저는 배다리 주민은 아니지만, 동네 분들이 부러워요.


Q. 배다리가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동네는 아닙니다만, 앞으로 이렇게 변 화했으면 좋겠다든지 혹은 미래에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실까요?

특별히 생각해본 건 없지만, 창의적이면서 예술가들이 편하게 꿈꾸고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동네였으면 하죠. 그리고 이왕이면 여러 구성원들이 서로 다투지 않았으면 하고요. (웃음) 어느 동네에나 갈등 구조는 있고 생각이 다른 게 당연하지만서도요. 그리고 산업도로 지하 공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그 부지에 마을 주민들 뿐만 아니라 인천 시민들이 누구나 와서 누릴 수 있는 그런 공공적인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원하는 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간이요.


Q. 끝으로 청산별곡님의 꿈이나 목표를 여쭤보고 싶어요.

사실 목표는 없어요. 그저 오늘을 잘 아름답게 살아보자는 마음이죠. 오늘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내일은 좀 이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게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 하루하루 오늘을 다듬어 나가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분명 계획적인 인간은 아닌데, 또 그렇게 오늘을 사는 것 자체가 계획일 수도 있겠네요. 다만, 어떤 목표로 향해 가는 길에서 가는 방식이나 속도에 그렇게 구애받지 않아요. 이렇게도 가고, 저렇게도 가고, 좀 천천히도 가면서 결국은 가는 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인지 일이 많아요. (웃음)


인터뷰 | 김영진
편집 | 강필호
사진 | 장비치, 김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