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패치워크에서는 최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미래의 예술공간 함께 상상하기'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1년 뒤 만들어질 예술공간을 이 공간을 사용할 예비 파트너들과 함께 상상하는 자리였죠. 가까운 거리의 참여자로,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로 두 번의 워크숍에 참여한 최성우님의 시선으로 기록한 워크숍 이야기와 만나 보세요! |
Writer
최성우 | 건축 설계를 공부하고 커뮤니티 디자인, 공간 기획 및 운영, 로컬브랜딩 사업 기획, 매거진 에디터 등으로 일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해왔던 이야기들을 버무려서 ‘웰니스Wellness’, 나와 커뮤니티 그리고 지구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거닐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며 보고 듣고 관찰하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다. @cloud.o.cloud

세 가지 키워드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곤 한다. 첫번째 키워드는 '공간'이다. 누구나 공간과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살아가기에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두번째 키워드는 '커뮤니티', 즉 '누구와 함께 있는가'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마지막 키워드는,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곧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이 변화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 사람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긍정적인 변화의 상황에 함께 하려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워크숍의 제목을 보자. '미래의 예술공간 함께 상상하기', 이 속에 앞서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보인다. 긍정적인 자극과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간(예술공간)'을 상상하는 자리라니. 이렇게 딱 맞는 자리에 어찌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은 기회로 참가자로 함께하게 되었고, 워크숍에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돌아와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이 글을 남긴다. 지면을 빌어 워크숍을 기획해 주신 패치워크 팀에 감사함을 전한다.
POINT 01.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을 돕는
섬세한 도구
150여 명이 지원한 열띤 경쟁 속에서 총 48명의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실행력과 풍부한 경험이 있는 것은 물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들이었다. 이렇게 여러 차원으로 퍼진 스펙트럼의 인물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입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대화도 편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패치워크에서는 어떤 상상이든 가능한 안전한 대화의 환경을 마련했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분위기 조성이 필수다. 워크숍은 체크인에서부터 잘 설계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조 배정을 확인하고 받은 명찰에는 ‘소속, 직책, 성명’과 같은 전형적인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참가자가 정성스레 작성한 사전 신청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서 만든, 그를 설명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나의 명찰에는 '건축과 도시를 감각하는 기록자', '공간과 장면을 기록하며 일상의 결을 포착하는 창작자'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명사', '수식어'를 가져다놓고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단어, 문구 역시 평범하지 않다. 특정한 직업을 표현하거나 흔한 미사여구는 없었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서 워크숍을 시작하기 전까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는 어색함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조원들과 인사 나누며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이런 장치들이 없었다면, 나와 같은 내향인 참가자는 진행자가 속히 마이크를 들고 나오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천정만 바라보거나 배회하다 최대한 늦게 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도구의 활용은 본 프로그램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보통의 워크숍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우선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예술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공간이 되면 좋을지 한번 상상해 보아요!"라고 화두를 던진다. 이후 조별로 모더레이터가 필요한 질문을 하면, 참여자들이 포스트잇에 답변을 써서 붙이고 같이 분류하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그런데 이 워크숍에서는 세션마다 다른 도구가 올라왔다. 각자가 떠오르는 생각을 잘 정리하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도구들이었다. '경험 이야기'를 할 때는 '행동', '장소', '생각' 등의 요소를 활용해 흩어져 있는 기억의 조각을 떠올릴 수 있게 도와주었고, 다음 질문인 '시도 이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각자가 시도를 통해 발견한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섬세한 도구들이 등장했다.



절정은 예술공간에 대한 상상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시간에서였다. 종이에 쓰고 붙이고 이야기하는 2차원 작업을 넘어, 실제 지형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등장한 것이다. 각자의 생각을 메모지에 적고 지형물에 꽂고 분류해 보는 과정 속에서, 오감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도구를 사용할 때마다 진행자는 '결코 완벽하게 작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해 주었다. 도구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보조적 역할을 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잘 짜여진 도구는 부담없이 툭툭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또 자유롭게 상상하게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POINT 02.
정성스러운 초대와 환대로 만든
안전한 환경
“여러분이 이곳을 함께 만들어 갈 분들입니다”
워크숍은 크게 3개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 '자기소개', 2부 '경험과 시도 이야기하기', 3부 '예술공간 상상하기' 순서였다. 모든 순서는 약 1시간씩 골고루 분배되어 진행됐다. 그렇다. 자기소개에만 1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워크숍의 1/3을 할애한다는 건 여기 모인 사람들이 궁금하고 이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전체 진행을 맡은 젤리장이 먼저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나눠준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의 특징은 명찰에 쓰여진 것처럼 '한 마디로 정의가 어려운 사람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 죽겠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미래의 예술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바로 이렇게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관계의 시작이 곧 예술공간 만들기의 시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이 이번 워크숍의 자리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생산적이다. 3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남은 이야기가 많아 내가 참여한 4조는 함께 저녁을 먹고 2차 자리까지 가지고 막차 시간에 쫓겨 아쉬운 마음에 다음을 기약했다. 현장에서 떠나기 전에도 워크숍이 끝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이야기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현장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조별로 대화를 나눌 때에도 누구 하나 튀는 사람이 없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POINT 3.
관계 맺기로부터 시작되는
공간 만들기의 힘
새로운 공공공간을 계획할 때, 전문가 간담회나 자문위원회 등 소수 전문가 그룹이 주도한 용역 사업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비전 제시나 기술적인 뒷받침 또한 분명히 필요한 지점이 있기에, 그에 따른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패치워크는 예술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기획자, 예술가, 교육자,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실제 예술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공간에 상상을 더해본 적이 있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또한,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 대해 열려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각자의 반경을 넘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관계의 시작이 어떤 임팩트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네트워킹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도 여러 차례 들려왔다. 하지만 한정된 워크숍 시간 동안에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것까지는 무리가 있다. 이후 별도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면, 페차쿠차 방식으로 자기 프로젝트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이번 워크숍에서의 방식을 적용해 진행한다면 실제로 예술공간이 만들어진 이후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워크숍이 기획된다면, 예술공간이 만들어질 자리인 실제 현장에서 만나도 좋겠다.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이를 몸으로 느껴보면 더욱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작지만 실제적인 시도를 통해 이곳에 필요한 예술공간은 무엇인지 정의하고 검증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조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이면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시야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관계 맺기로부터라고 했다. 이번 워크숍의 의미는 함께 상상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워크숍 현장에서 만난 48명의 상상가들과 함께, 예술공간이 탄생하는 앞으로의 과정 또한 계속해서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워크숍은 패치워크에게도 ‘도시를 함께 상상하는 법’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실험해보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워크숍을 기획하며 고민했던 질문들이 실제 참여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구체적인 장면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도시의 공간을 ‘함께’ 상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패치워크는 앞으로도 배다리라는 지역 안팎에서, 그리고 새로운 파트너들과 다양한 공간에서 도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한 연결과 배움은, 또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요? |
EDITOR'S NOTE
패치워크에서는 최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미래의 예술공간 함께 상상하기'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1년 뒤 만들어질 예술공간을 이 공간을 사용할 예비 파트너들과 함께 상상하는 자리였죠. 가까운 거리의 참여자로,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로 두 번의 워크숍에 참여한 최성우님의 시선으로 기록한 워크숍 이야기와 만나 보세요!
Writer
최성우 | 건축 설계를 공부하고 커뮤니티 디자인, 공간 기획 및 운영, 로컬브랜딩 사업 기획, 매거진 에디터 등으로 일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해왔던 이야기들을 버무려서 ‘웰니스Wellness’, 나와 커뮤니티 그리고 지구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거닐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며 보고 듣고 관찰하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다. @cloud.o.cloud
세 가지 키워드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곤 한다. 첫번째 키워드는 '공간'이다. 누구나 공간과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살아가기에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두번째 키워드는 '커뮤니티', 즉 '누구와 함께 있는가'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마지막 키워드는,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곧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이 변화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 사람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긍정적인 변화의 상황에 함께 하려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워크숍의 제목을 보자. '미래의 예술공간 함께 상상하기', 이 속에 앞서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보인다. 긍정적인 자극과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간(예술공간)'을 상상하는 자리라니. 이렇게 딱 맞는 자리에 어찌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은 기회로 참가자로 함께하게 되었고, 워크숍에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돌아와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이 글을 남긴다. 지면을 빌어 워크숍을 기획해 주신 패치워크 팀에 감사함을 전한다.
POINT 01.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을 돕는
섬세한 도구
150여 명이 지원한 열띤 경쟁 속에서 총 48명의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실행력과 풍부한 경험이 있는 것은 물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들이었다. 이렇게 여러 차원으로 퍼진 스펙트럼의 인물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입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대화도 편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패치워크에서는 어떤 상상이든 가능한 안전한 대화의 환경을 마련했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분위기 조성이 필수다. 워크숍은 체크인에서부터 잘 설계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조 배정을 확인하고 받은 명찰에는 ‘소속, 직책, 성명’과 같은 전형적인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참가자가 정성스레 작성한 사전 신청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서 만든, 그를 설명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나의 명찰에는 '건축과 도시를 감각하는 기록자', '공간과 장면을 기록하며 일상의 결을 포착하는 창작자'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명사', '수식어'를 가져다놓고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단어, 문구 역시 평범하지 않다. 특정한 직업을 표현하거나 흔한 미사여구는 없었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서 워크숍을 시작하기 전까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는 어색함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조원들과 인사 나누며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이런 장치들이 없었다면, 나와 같은 내향인 참가자는 진행자가 속히 마이크를 들고 나오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천정만 바라보거나 배회하다 최대한 늦게 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도구의 활용은 본 프로그램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보통의 워크숍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우선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예술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공간이 되면 좋을지 한번 상상해 보아요!"라고 화두를 던진다. 이후 조별로 모더레이터가 필요한 질문을 하면, 참여자들이 포스트잇에 답변을 써서 붙이고 같이 분류하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그런데 이 워크숍에서는 세션마다 다른 도구가 올라왔다. 각자가 떠오르는 생각을 잘 정리하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도구들이었다. '경험 이야기'를 할 때는 '행동', '장소', '생각' 등의 요소를 활용해 흩어져 있는 기억의 조각을 떠올릴 수 있게 도와주었고, 다음 질문인 '시도 이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각자가 시도를 통해 발견한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섬세한 도구들이 등장했다.
절정은 예술공간에 대한 상상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시간에서였다. 종이에 쓰고 붙이고 이야기하는 2차원 작업을 넘어, 실제 지형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등장한 것이다. 각자의 생각을 메모지에 적고 지형물에 꽂고 분류해 보는 과정 속에서, 오감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도구를 사용할 때마다 진행자는 '결코 완벽하게 작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해 주었다. 도구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보조적 역할을 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잘 짜여진 도구는 부담없이 툭툭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또 자유롭게 상상하게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POINT 02.
정성스러운 초대와 환대로 만든
안전한 환경
“여러분이 이곳을 함께 만들어 갈 분들입니다”
워크숍은 크게 3개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 '자기소개', 2부 '경험과 시도 이야기하기', 3부 '예술공간 상상하기' 순서였다. 모든 순서는 약 1시간씩 골고루 분배되어 진행됐다. 그렇다. 자기소개에만 1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워크숍의 1/3을 할애한다는 건 여기 모인 사람들이 궁금하고 이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전체 진행을 맡은 젤리장이 먼저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나눠준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의 특징은 명찰에 쓰여진 것처럼 '한 마디로 정의가 어려운 사람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 죽겠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미래의 예술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바로 이렇게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관계의 시작이 곧 예술공간 만들기의 시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이 이번 워크숍의 자리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생산적이다. 3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남은 이야기가 많아 내가 참여한 4조는 함께 저녁을 먹고 2차 자리까지 가지고 막차 시간에 쫓겨 아쉬운 마음에 다음을 기약했다. 현장에서 떠나기 전에도 워크숍이 끝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이야기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현장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조별로 대화를 나눌 때에도 누구 하나 튀는 사람이 없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POINT 3.
관계 맺기로부터 시작되는
공간 만들기의 힘
새로운 공공공간을 계획할 때, 전문가 간담회나 자문위원회 등 소수 전문가 그룹이 주도한 용역 사업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비전 제시나 기술적인 뒷받침 또한 분명히 필요한 지점이 있기에, 그에 따른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패치워크는 예술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기획자, 예술가, 교육자,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실제 예술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공간에 상상을 더해본 적이 있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또한,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 대해 열려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각자의 반경을 넘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관계의 시작이 어떤 임팩트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네트워킹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도 여러 차례 들려왔다. 하지만 한정된 워크숍 시간 동안에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것까지는 무리가 있다. 이후 별도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면, 페차쿠차 방식으로 자기 프로젝트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이번 워크숍에서의 방식을 적용해 진행한다면 실제로 예술공간이 만들어진 이후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워크숍이 기획된다면, 예술공간이 만들어질 자리인 실제 현장에서 만나도 좋겠다.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이를 몸으로 느껴보면 더욱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작지만 실제적인 시도를 통해 이곳에 필요한 예술공간은 무엇인지 정의하고 검증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조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이면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시야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관계 맺기로부터라고 했다. 이번 워크숍의 의미는 함께 상상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워크숍 현장에서 만난 48명의 상상가들과 함께, 예술공간이 탄생하는 앞으로의 과정 또한 계속해서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워크숍은 패치워크에게도 ‘도시를 함께 상상하는 법’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실험해보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워크숍을 기획하며 고민했던 질문들이 실제 참여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구체적인 장면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도시의 공간을 ‘함께’ 상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패치워크는 앞으로도 배다리라는 지역 안팎에서, 그리고 새로운 파트너들과 다양한 공간에서 도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한 연결과 배움은, 또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