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워크는 지난 몇년 동안 동인천 배다리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인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다들 우리처럼 헤매고, 삽질하고, 우당탕탕 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꿈꾸며 해나가고 있겠지?' 서로의 실험담을, 과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테스트 로컬 컨퍼런스>를 기획했습니다. 건축, 공공예술, 커뮤니티, 브랜드, 축제 등의 키워드로 내 곁의 일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특별한 현장이었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일 실험가들이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해 봅니다.
다섯번째 일 실험가, 김미소
한국음악을 공부한 뒤 대중음악, 전통예술, 축제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해왔습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APaMM, 플랫폼창동61, 잔다리페스타가 있으며, 현재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2021년 뮤직·컬처 콘텐츠 에이전시인 ㈜알프스를 설립해 개성 있는 음악 문화 콘텐츠를 전세계의 라이브 플랫폼에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간은 강원도 철원 고석정 일원입니다. 피스트레인이 페스티벌 사이트로 철원을 선택하게 된 배경과 지역과 협력하여 운영하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피스트레인 운영진이 철원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조력하는지, 페스티벌에 있어 공간과 로컬은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이야기해봅니다.
피스트레인의 시작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만들고 있습니다. 피스트레인은 음악, 평화, 로컬 등 여러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는 페스티벌인데요. 오늘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지역의 관계 맺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7년, 남북 긴장 상태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어요. 핵을 쏘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분위기가 정말 심상치 않았죠. 그때 저희는 해외 관계자들을 초청해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주는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온 한 기획자가 그 상황을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전쟁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홍대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분이 DMZ 투어를 요청하셔서 함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과 땅굴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음악을 통해 평화를 노래하는 페스티벌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너희가 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묻거나 따지지 않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DMZ 페스티벌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어요. 낯설고 색다른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강원도 고성과 철원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죠. 당시 고성은 아직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이라 이동성을 고려해 철원을 선택했습니다. 철원은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최적의 장소였어요. 그래서 강원도에서 예산안을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 수소문했습니다. 강원도에는 대표적인 페스티벌이 없었기 때문에, 올림픽 이후의 레거시 사업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죠. 그렇게 사단법인 피스트레인이 주관 주최하고 강원도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형태로 철원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긴장 상황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페스티벌이었는데, 평창올림픽 이후에는 평화적인 분위기로 반전되었습니다. 저희가 3월 27일에 피스트레인을 6월 25일에 개최한다고 기자간담회를 가졌고, 그 사이에 4.27 판문점 선언이 있었어요. 덕분에 피스트레인에서 종전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치 지향적이고 새로운 문화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들이 축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성공적으로 첫 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아이덴티티와 가치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매년 6월 둘째 주에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립니다. 2018년에 시작한 이 페스티벌은 코로나19로 두 번 쉬었고, 총 5번 진행되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을 처음 시작할 때 정말 많은 논의를 했어요. 특히 페스티벌을 열 수 없었던 2년 동안 피스트레인을 주제로 잡지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핵심 가치는 '평화', '퍼블릭', '로컬'입니다. 평화라는 것은 단순히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평화를 탐색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을 의미해요. 우리는 음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또 비상업적이면서 대중 친화적인 페스티벌을 만들자는 목표도 세웠죠. 상업적인 페스티벌이 이미 너무 많았거든요, 좀 더 공공성 있는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페스티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대중 친화적이길 바랐습니다.
로컬과의 상생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지역 친화적이지 못했던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를 보며, 철원에서는 지역 인프라를 살리고 협력하여 지역에 환원하고자 했어요. 우리가 하려는 모델은 공공 예산을 일부라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거든요. 민과 관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저희의 내재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차별화된 특징은 헤드라이너가 없다는 점이에요.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슈퍼스타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뮤지션을 부르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시대가 원했던 음악을 존중하고 숨겨진 좋은 음악을 발굴하고자 했죠. 젊은 층이 소비하는 음악이 많지만, 대중 음악사적으로 장년층 뮤지션들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장르가 생겼고, 이를 기억하고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레전더리 뮤지션들을 초청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스트레인은 차별이나 규제에 얽매이지 않으려 합니다. 기존 페스티벌들이 2030 세대가 멋지게 차려입고 와인 마시는 도심형 피크닉 페스티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피스트레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걸 목표로 했어요. 그래서 애써 멋내기보다 뮤지션들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관객 리뷰 중 '1080 놀이터 같았다'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피스트레인과 철원의 관계 맺기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 철원, 음악이 새롭게 엮이는 것이었습니다. 철원은 혹한의 날씨와 군부대, 쌀 등의 이미지 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군사 지역이자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죠. 저희는 자본 중심의 음악과 축제, 수도권 중심의 문화 콘텐츠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결국 피스라는 큰 주제가 있지만, 차트 밖 음악이 소개될 장이 필요하다는 것과, 수도권에 집중된 축제들에서 벗어나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지역과 씬을 전환시키고자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철원의 자원과 환경을 활용해 피스트레인에서는 다른 시공간을 연출합니다.
피스트레인 구조를 보면, 철원 시내에 있는 고석정에서 메인 공연이 펼쳐집니다. 처음 철원 고석정에 갔을 때는 조금 어수선하게 느껴졌어요. 낡은 유원지에 두루미, 임꺽정 동상, 탱크, 비행기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곳의 독특함을 잘 활용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원 고석정은 오래된 유원지라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행사를 열기에도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페스티벌 부지로 선택하게 되었죠. 평소에는 철원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중장년층의 관광 코스로 이용되던 곳이었지만, 페스티벌 기간 동안에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고석정은 철원 시내에 위치해 있는데, 원래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 규제로 인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장소가 담긴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피스트레인이 담고 있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북조선 노동당사'에서 진행된 공연인데요. 이곳은 전쟁 때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계속 탈환되었던 지역으로,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북한 건물입니다. 저희는 이 공간에서 어떤 공연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철원 지역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군가일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군가는 젠더적으로도 특수성이 있고, 전쟁을 선동하기 위한 맥락이 있는 곡인데요. 이를 다르게 구성해 댄스 팀과 브라스 밴드와 함께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연을 '우정의 무대'라고 이름 붙이고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 공연하게 되었죠.

또 다른 스페셜 프로그램은 '월정리역'에서 진행된 공연입니다. 이곳은 철원군 관할이 아닌 유엔 관할 지역이라 허가를 받아야만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평화로운 분위기였던 당시에는 공연이 허락되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유엔 관할 철로 위에서 공연을 진행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소규모 프로그램을 기획해 월정리역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소이산은 최근 민간에 개방된 공간으로, 해설사와 함께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판타지극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학살이 일어났던 수도국터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아무것도 없는 빈터로 남아있는데요. 여기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침묵'이라는 제목의 엠비언트 음악 공연도 진행했습니다.
음악은 캠핑과 결합된 문화거든요. 저희 메인 사이트에서는 캠핑을 할 수 없어서, 캠핑을 원하는 많은 관객들의 요청을 반영해 메인 사이트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캠핑장을 마련했습니다. 철원 시내의 모든 숙소가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캠핑 프로그램을 만든 건데, 이 프로그램은 2박 3일 동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문화를 즐길 진정한 팬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그런 분들을 위해 미니 전야제도 열고 있습니다. 또한, 용양보에서 소수의 관객들을 위해 해설사와 함께하는 산책 프로그램도 진행했어요. 이 프로그램은 관광공사와 협업을 통해 새로 오픈한 관광지를 소개하고, 중장년층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공간을 젊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을 찾는 사람들
처음 철원에서 피스트레인을 시작할 때는 갑작스러운 개최로 공공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철원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강원도와 소통해 개최를 확정했기 때문에, 철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죠. 하지만 첫 해에 많은 청년들이 몰려와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들이 할 수 없는 이벤트를 가져온 기획자들임을 인정해주셨습니다. 이후로 철원은 다른 DMZ 지역으로 가지 말라고 하면서 저희 페스티벌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어요.
피스트레인과의 협업 덕분에 철원은 원래 오지 않았을 사람들이 방문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이 지역을 찾게 되죠. 예를 들어, 영국 펑크락의 창시자인 섹스피스톨즈가 피스트레인의 가치에 공감해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대형 페스티벌이 아닌데도 무신사 같은 브랜드들이 가치에 공감하며 철원을 방문하고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어요.
피스트레인과 연결되는 다양한 커뮤니티도 생겨났습니다. 피스메이커, 피스플래너, 피스부스터즈와 같은 이들로, 저희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구축하면서 철원으로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티켓의 30%는 철원 군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지역 주민들과도 연결되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DMZ 철원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고,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철원에서 좋은 기억과 감각을 얻고 있습니다. 주상절리길이나 고석정 꽃밭을 공개하면서 철원군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을 향해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여전히 철원은 순간을 경험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공간을 자주 찾는 관계 인구를 늘려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 점에서 피스트레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계가 지속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저희가 외부의 시선으로 철원의 자연, 자원, 그리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페셜 프로그램이나 캠핑장은 관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죠. 철원 김화 지역은 최북단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인데, 그곳에서도 무언가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 지역에서 직접 페스티벌을 열지는 못했지만, 캠핑장을 마련하면서 그 지역을 포용하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철원의 자연 경관과 지역 자원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저희는 많은 행사들이 '호스트'가 없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와 목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진정으로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피스트레인을 통해 호스트와 게스트를 명확히 구분하고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사건을 만들고, 사건이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피스트레인을 이어가며 철원과 함께 큰 그림을 그려나갈 계획입니다.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
다섯번째 일 실험가, 김미소
한국음악을 공부한 뒤 대중음악, 전통예술, 축제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해왔습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APaMM, 플랫폼창동61, 잔다리페스타가 있으며, 현재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2021년 뮤직·컬처 콘텐츠 에이전시인 ㈜알프스를 설립해 개성 있는 음악 문화 콘텐츠를 전세계의 라이브 플랫폼에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시작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만들고 있습니다. 피스트레인은 음악, 평화, 로컬 등 여러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는 페스티벌인데요. 오늘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지역의 관계 맺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7년, 남북 긴장 상태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어요. 핵을 쏘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분위기가 정말 심상치 않았죠. 그때 저희는 해외 관계자들을 초청해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주는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온 한 기획자가 그 상황을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전쟁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홍대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분이 DMZ 투어를 요청하셔서 함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과 땅굴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음악을 통해 평화를 노래하는 페스티벌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너희가 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묻거나 따지지 않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DMZ 페스티벌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어요. 낯설고 색다른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강원도 고성과 철원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죠. 당시 고성은 아직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이라 이동성을 고려해 철원을 선택했습니다. 철원은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최적의 장소였어요. 그래서 강원도에서 예산안을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 수소문했습니다. 강원도에는 대표적인 페스티벌이 없었기 때문에, 올림픽 이후의 레거시 사업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죠. 그렇게 사단법인 피스트레인이 주관 주최하고 강원도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형태로 철원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긴장 상황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페스티벌이었는데, 평창올림픽 이후에는 평화적인 분위기로 반전되었습니다. 저희가 3월 27일에 피스트레인을 6월 25일에 개최한다고 기자간담회를 가졌고, 그 사이에 4.27 판문점 선언이 있었어요. 덕분에 피스트레인에서 종전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치 지향적이고 새로운 문화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들이 축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성공적으로 첫 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아이덴티티와 가치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매년 6월 둘째 주에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립니다. 2018년에 시작한 이 페스티벌은 코로나19로 두 번 쉬었고, 총 5번 진행되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을 처음 시작할 때 정말 많은 논의를 했어요. 특히 페스티벌을 열 수 없었던 2년 동안 피스트레인을 주제로 잡지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핵심 가치는 '평화', '퍼블릭', '로컬'입니다. 평화라는 것은 단순히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평화를 탐색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을 의미해요. 우리는 음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또 비상업적이면서 대중 친화적인 페스티벌을 만들자는 목표도 세웠죠. 상업적인 페스티벌이 이미 너무 많았거든요, 좀 더 공공성 있는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페스티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대중 친화적이길 바랐습니다.
로컬과의 상생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지역 친화적이지 못했던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를 보며, 철원에서는 지역 인프라를 살리고 협력하여 지역에 환원하고자 했어요. 우리가 하려는 모델은 공공 예산을 일부라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거든요. 민과 관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저희의 내재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의 차별화된 특징은 헤드라이너가 없다는 점이에요.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슈퍼스타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뮤지션을 부르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시대가 원했던 음악을 존중하고 숨겨진 좋은 음악을 발굴하고자 했죠. 젊은 층이 소비하는 음악이 많지만, 대중 음악사적으로 장년층 뮤지션들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장르가 생겼고, 이를 기억하고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레전더리 뮤지션들을 초청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스트레인은 차별이나 규제에 얽매이지 않으려 합니다. 기존 페스티벌들이 2030 세대가 멋지게 차려입고 와인 마시는 도심형 피크닉 페스티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피스트레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걸 목표로 했어요. 그래서 애써 멋내기보다 뮤지션들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관객 리뷰 중 '1080 놀이터 같았다'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피스트레인과 철원의 관계 맺기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 철원, 음악이 새롭게 엮이는 것이었습니다. 철원은 혹한의 날씨와 군부대, 쌀 등의 이미지 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군사 지역이자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죠. 저희는 자본 중심의 음악과 축제, 수도권 중심의 문화 콘텐츠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결국 피스라는 큰 주제가 있지만, 차트 밖 음악이 소개될 장이 필요하다는 것과, 수도권에 집중된 축제들에서 벗어나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지역과 씬을 전환시키고자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철원의 자원과 환경을 활용해 피스트레인에서는 다른 시공간을 연출합니다.
피스트레인 구조를 보면, 철원 시내에 있는 고석정에서 메인 공연이 펼쳐집니다. 처음 철원 고석정에 갔을 때는 조금 어수선하게 느껴졌어요. 낡은 유원지에 두루미, 임꺽정 동상, 탱크, 비행기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곳의 독특함을 잘 활용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원 고석정은 오래된 유원지라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행사를 열기에도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페스티벌 부지로 선택하게 되었죠. 평소에는 철원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중장년층의 관광 코스로 이용되던 곳이었지만, 페스티벌 기간 동안에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고석정은 철원 시내에 위치해 있는데, 원래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 규제로 인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장소가 담긴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피스트레인이 담고 있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북조선 노동당사'에서 진행된 공연인데요. 이곳은 전쟁 때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계속 탈환되었던 지역으로,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북한 건물입니다. 저희는 이 공간에서 어떤 공연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철원 지역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군가일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군가는 젠더적으로도 특수성이 있고, 전쟁을 선동하기 위한 맥락이 있는 곡인데요. 이를 다르게 구성해 댄스 팀과 브라스 밴드와 함께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연을 '우정의 무대'라고 이름 붙이고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 공연하게 되었죠.
또 다른 스페셜 프로그램은 '월정리역'에서 진행된 공연입니다. 이곳은 철원군 관할이 아닌 유엔 관할 지역이라 허가를 받아야만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평화로운 분위기였던 당시에는 공연이 허락되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유엔 관할 철로 위에서 공연을 진행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소규모 프로그램을 기획해 월정리역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소이산은 최근 민간에 개방된 공간으로, 해설사와 함께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판타지극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학살이 일어났던 수도국터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아무것도 없는 빈터로 남아있는데요. 여기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침묵'이라는 제목의 엠비언트 음악 공연도 진행했습니다.
음악은 캠핑과 결합된 문화거든요. 저희 메인 사이트에서는 캠핑을 할 수 없어서, 캠핑을 원하는 많은 관객들의 요청을 반영해 메인 사이트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캠핑장을 마련했습니다. 철원 시내의 모든 숙소가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캠핑 프로그램을 만든 건데, 이 프로그램은 2박 3일 동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문화를 즐길 진정한 팬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그런 분들을 위해 미니 전야제도 열고 있습니다. 또한, 용양보에서 소수의 관객들을 위해 해설사와 함께하는 산책 프로그램도 진행했어요. 이 프로그램은 관광공사와 협업을 통해 새로 오픈한 관광지를 소개하고, 중장년층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공간을 젊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피스트레인을 찾는 사람들
처음 철원에서 피스트레인을 시작할 때는 갑작스러운 개최로 공공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철원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강원도와 소통해 개최를 확정했기 때문에, 철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죠. 하지만 첫 해에 많은 청년들이 몰려와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들이 할 수 없는 이벤트를 가져온 기획자들임을 인정해주셨습니다. 이후로 철원은 다른 DMZ 지역으로 가지 말라고 하면서 저희 페스티벌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어요.
피스트레인과의 협업 덕분에 철원은 원래 오지 않았을 사람들이 방문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이 지역을 찾게 되죠. 예를 들어, 영국 펑크락의 창시자인 섹스피스톨즈가 피스트레인의 가치에 공감해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대형 페스티벌이 아닌데도 무신사 같은 브랜드들이 가치에 공감하며 철원을 방문하고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어요.
피스트레인과 연결되는 다양한 커뮤니티도 생겨났습니다. 피스메이커, 피스플래너, 피스부스터즈와 같은 이들로, 저희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구축하면서 철원으로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티켓의 30%는 철원 군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지역 주민들과도 연결되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DMZ 철원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고,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철원에서 좋은 기억과 감각을 얻고 있습니다. 주상절리길이나 고석정 꽃밭을 공개하면서 철원군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을 향해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여전히 철원은 순간을 경험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공간을 자주 찾는 관계 인구를 늘려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 점에서 피스트레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계가 지속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저희가 외부의 시선으로 철원의 자연, 자원, 그리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페셜 프로그램이나 캠핑장은 관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죠. 철원 김화 지역은 최북단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인데, 그곳에서도 무언가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 지역에서 직접 페스티벌을 열지는 못했지만, 캠핑장을 마련하면서 그 지역을 포용하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철원의 자연 경관과 지역 자원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저희는 많은 행사들이 '호스트'가 없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와 목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진정으로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피스트레인을 통해 호스트와 게스트를 명확히 구분하고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사건을 만들고, 사건이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피스트레인을 이어가며 철원과 함께 큰 그림을 그려나갈 계획입니다.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