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입히는 방법

패치워크는 지난 몇년 동안 동인천 배다리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인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다들 우리처럼 헤매고, 삽질하고, 우당탕탕 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꿈꾸며 해나가고 있겠지?' 서로의 실험담을, 과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테스트 로컬 컨퍼런스>를 기획했습니다. 건축, 공공예술, 커뮤니티, 브랜드, 축제 등의 키워드로 내 곁의 일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특별한 현장이었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일 실험가들이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해 봅니다. 


네번째 일 실험가, 임수민

서울과 해외를 넘나들며 흑백 필름으로 길거리 사진을 찍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습니다. 기획과 브랜딩에도 관심이 많아 회사를 몇 년 다닌 후 프리랜서로 전향했고, 현재는 통영에서 마케팅/브랜딩/번역 업무를 하는 동시에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도자기를 판매하는 Sooparkling Lemonade와 오프라인 샵 Lemon Shop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랜딩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입히는 방법


서울 사람이 통영으로 이주하면서 오래된 구옥을 낭만 가득한 신혼집으로 리뉴얼하는 과정을 담아 화제가 된 “콜미쑤”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통영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브랜드 쑤파클링 레모네이드와 오프라인 쇼룸 Lemon Shop을 운영하며 느낀 로컬 브랜드의 중요성과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통영에서 온 임수민입니다. 통영에서 '레몬샵'이라는 활기찬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도자기도 판매하고, 종종 카페 역할도 합니다. 저는 원래 통영 사람이 아니에요. 서울 출신이고 심지어 사실 서울 사람도 아닌 게, 해외에서 18년을 살다 왔어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집이라고 하면 당연히 서울이었고,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통영에서 1년 반째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수리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키우고 되었는데요. 서울이 강아지에게는 정말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사람인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불편함이 많았고요. 저는 강아지와 매일 1시간씩 세 번 산책하는데, 오토바이가 올까 봐 뒤를 자주 돌아보느라 목 디스크까지 생길 정도였어요. 비싼 전세인데도 햇빛을 잘 볼 수 없고, 소음이나 공기 같은 환경적 문제도 힘들었죠. 그러던 중 남편이 '세일러'다 보니 바다 쪽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여수, 부산, 통영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살아보자고 했어요. 남편이 그런 질문을 해준 덕분에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통영에 집을 구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어요. 어느 날 남편이 통영에 집을 보러 갔는데, 중개인과 문을 열자마자 그 집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대요. 겨울철에 동파가 되어 한 달 동안 약 800만 원어치 물이 쏟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중개인은 '이 집은 안되겠다'며 포기할 줄 알았지만, 남편은 오히려 '기회가 온 것 같아'라며 전화해왔어요. 결국 저희는 이 집을 정말 저렴하게,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으로 구매하게 되었죠. 4개월 동안 예쁘게 리모델링했어요. 지금 이 공간은 잿빛에서 무지개처럼 변화했답니다.


일상에 낭만을 더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나다운 브랜드와 공간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유명한 셀럽들의 집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레몬을 예쁘게 담아놓은 것을 보고 '나도 나만의 주방이 생기면 레몬 보울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울에 레몬을 채워 봤는데, 일주일도 안 돼서 파리가 생기더라고요. 금방 상하는 레몬 대신 도자기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레몬 그릇을 만들어봤고, 사람들이 사고 싶다고 문의를 주시면서 사업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이게 바로 제 브랜드, 쑤파클링 레모네이드의 시작이었어요.

제 브랜드의 가장 큰 목적은 이 레몬 하나로 여러분의 부엌에 통영의 남부 기운을 더하고 싶다는 거예요. 서울이든 어디든, 잿빛 느낌이 나는 부엌이라도 이 레몬 하나로 화사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렇게 시작한 사업이 점점 주문량이 많아져서, 결국 작업실을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레몬샵'이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도자기를 판매하는 쇼룸과 소소한 카페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나누는 태도로 만드는 로컬 콘텐츠

사실 이 작업실은 처음에 통영 분들을 위한 공간으로 구상했어요. 저에게 통영은 어딜 가든 감탄사가 나오는 풍경을 지닌 영감을 주는 곳이거든요. 하지만 통영 분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무감각해요. 그래서 통영에서 받은 영감만큼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서울이나 세계 곳곳에서 받았던 영감을 이곳에 풀어보았어요.

저는 통영이라는 키워드를 잘 사용하지 않아요. 강아지 때문에 이곳에 살게 되었는데, 문화적 자원 같은 거창한 이유를 말하는 건 거짓말이거든요. 포장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방식은 한계가 있고, 배신감을 줄 수 있잖아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보다는 저 자신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통영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기보다 통영에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집을 고치는 과정이나 도자기를 만들며 기뻐하는 모습을 담았고,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땐 부산에 가는 모습을 공유하기도 했죠.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통영이라는 키워드 없이 그냥 제 이야기로 증명했던 것 같아요.

또 통영 분들은 로컬이라는 단어를 좀 낯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통영이면 통영이지 굳이 스스로를 로컬이라고 칭하지 않아요. 로컬의 재미를 찾는 건 오히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시각인 것 같기도 해요. 인구가 적다 보니 젊은 사람도 별로 없고, 서로 다 아는 관계거든요. 그와중에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통영 로컬이 추천하는 맛집’ 같은 콘텐츠를 만들면 어떻게 생각할까 싶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로컬이나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실제로 로컬 분들과 함께 여러 가지를 했어요. 콘텐츠를 풀 때도 '로컬과 로컬이 만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여기서 팝업해요. 오세요!'라는 식으로 접근했죠. 레거시라는 카페와 협업해 레몬에이드 팝업을 진행했는데, 로컬 분들이 많이 방문해 주셨어요. 여기에 와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뿌듯했죠. 저는 해외에서 3년마다 나라를 옮겨다니다 보니 항상 아웃사이더로 살았는데, 여기에선 처음으로 급속히 인사이더가 된 기분이에요.

통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제가 무언가를 얻기보다, 반대로 무언가를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 특성상 3년 안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는데, 너무 통영에 포커스를 두면 그 키워드 없이 나는 뭘까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통영에서 할 뿐이고, 제가 여기에서 행복하게 지내듯 여러분도 여길 오면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주민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해

아름다움을 새롭게 전달하기

로컬 브랜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지역 주민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해야 하더라고요. 집을 고칠 때도 통영 분들이 왜 그런 집에 사냐며 더 나은 집을 소개해 주겠다고 말리셨죠. 하지만 저희는 저희만의 플랜이 있었어요. 이렇게 벽을 치고, 기둥을 세우고, 계단을 만들면 되겠다 하고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있었어요.

제가 레몬샵을 시작한 공간은 3년 넘게 방치된 곳이었어요. 주차가 불가능한 곳이라 주인도 무인 카페를 하려다 포기했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주차 문제를 걱정하며 말리셨어요. 저는 여기는 주차는 안 되지만 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지도에 잘 표기했고, 불편하더라도 저를 알고 이 공간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와주길 바랐어요.

제 공간 주변에는 봄에 벚꽃이 정말 아름답게 피어나요. 오는 길 내내 벚꽃 가로수가 장관을 이루고요. 조금만 걸으면 통영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리도 있어요. 통영 주민들조차 턱을 괴고 감상할 정도로 경치가 정말 아름다워요. 장난으로 "이 다리를 본 거면 통영 다 본 거야."라고 할 정도예요. 주차가 불편해도 제가 이 공간에서 봤던 가치가 있었던 거죠.


결국은 어디에서보다 내가 누구고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로컬 브랜드로 살아남으려면 지역이 아닌, 특정 브랜드나 공간이 궁금해서 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부산 여행 가자'고 하기보다, '이 브랜드 팝업 하니까 부산 가자'고 해요. 이미 여행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 지역 자체보다는 어떤 브랜드나 공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 그 지역에 가더라고요. 실제로 저희가 처음 레몬샵을 운영할 때, 금토일 3일만 열었는데 매출이 천만 원을 넘었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대부분 외지 분들이었고, 저를 보러 통영에 왔다고 하며 찜질방에서 자고 가신 분들도 많았죠.

그래서 결국,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많은 분들이 로컬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면서도 서울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데, 이런 근본적인 고민이 없다면 요즘 서울에서도 힘들다는 걸 느꼈어요. 경쟁이 치열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디자인의 영역에서 누군가를 앞서나가는 시대도 아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요. 그게 진짜 나만의 것이면 어디에서 하든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아요.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