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과 연결을 만들 때
우리가 고려하는 것들
해리
첫 번째 세션의 주제가 '소통과 연결'이었어요. 저희가 세 분을 모신 이유도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분 모두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연결을 만들고 소통의 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 같아요.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거나, 함께하는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먼저 아람 님은 DIT과정을 만들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아람
저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제 DIT 프로그램에 모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중심에 '만들기' 작업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작업이나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행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조금 독특하고 주체적인 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노력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요. 바로 '초대'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미리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저는 주로 재미있어 보이는 포스터나 홍보물을 만들어서 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해요. 하지만 포스터보다 더 중요한 건 정보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일이에요. 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라 문자로 연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요. 대신 전화로 갑작스럽게 대화하는 일이 잦죠. 이런 상황에서 기획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잘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느낍니다.
해리
아람님이 파트너들의 속성을 잘 고려하면서 그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전담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마치 돌다리를 놓아주는 것처럼, '이 순서대로 오시면 됩니다'라고 안내해주는 거죠. 그리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걸 통해 사람들이 '나 같은 이상한 애들이 모여 있겠네'라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람 님의 강점인 것 같아요.
다음으로 종범님에 대해서도 궁금한데, 사실 종범 님을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부분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모으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계속해서 모이고 만나는지요. 저도 종범님과 일을 해봤지만, 종범님이 특별히 많이 개입하는 것 같진 않아요. 오히려 내버려 두는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게 기술인가 싶기도 하고요. 종범님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게 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그 과정이 정말 궁금합니다.
종범
일단 저는 운이 많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누군가를 섭외할 때 이 정도 잘할 것이다라는 기대치가 있다고 하면, 대체로 그만큼 잘 해 주시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개입하면 섭외한 분들의 입장에서도 재미없잖아요. 그분들이 재미있게 느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고, 그걸 통해 함께 계속 뭔가를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크다고 생각해요. 매거진을 만들거나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도, 참여하는 분들이 어떻게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프로그램을 보여줄 때는 최대한 과정을 강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에서 정말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도 모집 이후의 과정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는 의도적으로 프로그램이 얼마나 재미있고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계속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를 보고 '이번에는 시간이 안 돼서 못 했지만, 다음에는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하시고, 점점 더 좋은 분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이 알아서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더라고요.
해리
종범님은 그 사람의 가능성을 많이 믿어주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식으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들을 잘 기록한다는 점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보여주면서 안심시키는 느낌이 있어요. 아람님이 말한 '잘 초대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런 기록을 통해 예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고요.
젤리장님은 어린아이부터 선생님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특히 취향이나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으셨을 텐데요. 공공의 이슈를 다루는 참여적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섬세한 소통 방식이 필요할 텐데,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이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고집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젤리장
저는 소통을 할 때 '모릅니다. 알려주세요.'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 이유는 제가 지역의 이슈를 다루다보니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 분들이 오시면 종종 처음부터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 "왜 소리 지르세요?"라고 대응하면, 절대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요.
저는 늘 제 역할을 명확히 정해요. "저는 캠페인 전문가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잘 다듬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선생님들이 필요합니다. 제게 말을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하죠. 그 순간 그분들은 자문위원이 된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도 자문위원 역할을 맡기기도 합니다. 어떤 복잡한 소통을 할 때 서로의 역할이 불분명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기획자로서의 제 역할과 그분들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리해요.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협업이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해리
흥미로운 표현이에요. 참석하신 분들이 사실 그 지역의 전문가이시고, 그분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드리면서 '이게 당신의 역할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함께하는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람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이들의 역할에 맞는 자리를 초대하고 계신 게 아닌가 싶어서 정말 재밌네요.

예상치 못한 순간과
마주하는 태도에 대하여
현장 참여 질문자
아람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아까 공간을 구성할 때 도로를 막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이 개인 사유지라서 가능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지자체의 허락을 받고 진행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아람
너무 좋은 질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약 32m 정도의 짧은 구간을 막고 공원화 작업을 시도했어요. 일단 적법하게 진행하자고 생각해서 사전에 경찰서에 갔습니다. 도로는 시 소유이기 때문에, 어떤 도로를 점유하려면 신고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경찰서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니, 그분이 황당해하시면서 길이가 너무 짧아서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이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음 민원이 신고되었고, 그때 경찰서에서가 아닌 유성구청의 시설관리과에서 저희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불필요한 적재물을 놓아 문제가 생겼으니 다 치워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힘들게 조성한 공간이라 억울하고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하지만 저희끼리는 이런 해프닝이 생긴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했고, 동네에서 그래도 알려진 것에 기뻐했어요.
결론적으로, 행사를 하고자 하는 날에는 먼저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는 도로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조항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혹은 "네, 정리할게요. 곧 끝나요."라는 문장을 외우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외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해리
연결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지역 사회나 공공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정말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잖아요. 내가 초대한 파트너들뿐만 아니라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소통도 필요하고, 예기치 않은 변수들도 많죠.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뭔가를 만들어낸 순간이 있었다면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젤리장 작가님,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 같아요!
젤리장
프로젝트가 다 에피소드입니다. 예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현장과 시민들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어떤 상황에 마주칠지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아요. 저와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은 대체로 방향성만 잡고 갑니다.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오히려 곤란해질 수 있죠. 예를 들어, 제가 진행했던 ‘공공 빗자루’ 프로젝트가 있어요. ‘내 집 앞 눈 쓸기 캠페인’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빗자루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담벼락에 공공 빗자루를 비치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죠. 그때 처음 들었던 반응이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죠?”라는 것이었어요.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 가져간다면 다시 채워 넣으면 되는 거죠. 누군가 가져가지 않을 때까지 채우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다른 동네 사람이 우리 동네까지 와서 이걸 가져갈 일은 거의 없어요. 우리 동네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겁니다.
저는 활동을 할수록 점점 더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런 순간에 저는 초긍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없으면 채우면 되고, 누가 가져갔다면 얼마나 좋았으면 자기 지역에서 시도해보려고 가져갔나보다 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게 정말 중요해요.
해리
아람님이 말씀하신, '경찰서에서 이렇게 오다니 성공인 걸' 했다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사고 방식인 것 같아서 너무 재밌네요.
종범
저희는 공공과의 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저희를 찾아오는 담당자들은 보통 적극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입니다. 감사하게도 저희를 잘 이해하고 지역에서 뭔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찾아오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과 협업할 때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데요. 헤드폰을 쓰고 서로의 말을 전하는 게임 있잖아요. 저는 문득 저희의 역할이 그중에서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공에서 정책이나 사업을 시작할 때 선한 의지와 좋은 취지에서 출발하지만, 여러 관계 부처 혹은 현실을 거치면서 점점 원래의 의미와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한테는 처음과 다소 멀어진 말이 전해질 때가 많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어떻게든 처음의 취지를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배로 노력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저희는 공공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의 중요성을 잊는 순간 일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의 취지와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 저희에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는 서류상으로는 의미를 되돌리기 이전보다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지역에 진짜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참여한 분들의 만족도는 오히려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람
일을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과의 예상치 못한 조우가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궁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소파를 길가에 두었는데, 한 할머니가 매일 찾아와서 그 소파를 달라고 하셨어요. 정말 간절하게 요청하시길래, 잊지 않고 꼭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죠. 근처에 사신다기에 프로젝트가 끝난 날, 소파를 3층까지 이고 지고 가서 드렸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내가 뭐라도 줄게"라고 하시며 고마워하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또, 야외에서 DIT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가끔 기웃거리시거나 만지작거리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때마다 "해보실래요? 재밌어요." 하고 말도 걸고 권유하는 편입니다.
문득 생각해보면, 사실 저는 창업하기 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붙이거나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DIT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람들과 더 쉽게 소통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이 날 도와주고 싶군요!'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나는 얼마든지 줄게!”라는 마음가짐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소통과 연결을 만들 때
우리가 고려하는 것들
해리
첫 번째 세션의 주제가 '소통과 연결'이었어요. 저희가 세 분을 모신 이유도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분 모두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연결을 만들고 소통의 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 같아요.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거나, 함께하는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먼저 아람 님은 DIT과정을 만들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아람
저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제 DIT 프로그램에 모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중심에 '만들기' 작업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작업이나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행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조금 독특하고 주체적인 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노력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요. 바로 '초대'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미리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저는 주로 재미있어 보이는 포스터나 홍보물을 만들어서 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해요. 하지만 포스터보다 더 중요한 건 정보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일이에요. 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라 문자로 연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요. 대신 전화로 갑작스럽게 대화하는 일이 잦죠. 이런 상황에서 기획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잘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느낍니다.
해리
아람님이 파트너들의 속성을 잘 고려하면서 그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전담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마치 돌다리를 놓아주는 것처럼, '이 순서대로 오시면 됩니다'라고 안내해주는 거죠. 그리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걸 통해 사람들이 '나 같은 이상한 애들이 모여 있겠네'라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람 님의 강점인 것 같아요.
다음으로 종범님에 대해서도 궁금한데, 사실 종범 님을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부분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모으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계속해서 모이고 만나는지요. 저도 종범님과 일을 해봤지만, 종범님이 특별히 많이 개입하는 것 같진 않아요. 오히려 내버려 두는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게 기술인가 싶기도 하고요. 종범님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게 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그 과정이 정말 궁금합니다.
종범
일단 저는 운이 많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누군가를 섭외할 때 이 정도 잘할 것이다라는 기대치가 있다고 하면, 대체로 그만큼 잘 해 주시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개입하면 섭외한 분들의 입장에서도 재미없잖아요. 그분들이 재미있게 느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고, 그걸 통해 함께 계속 뭔가를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크다고 생각해요. 매거진을 만들거나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도, 참여하는 분들이 어떻게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프로그램을 보여줄 때는 최대한 과정을 강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에서 정말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도 모집 이후의 과정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는 의도적으로 프로그램이 얼마나 재미있고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계속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를 보고 '이번에는 시간이 안 돼서 못 했지만, 다음에는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하시고, 점점 더 좋은 분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이 알아서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더라고요.
해리
종범님은 그 사람의 가능성을 많이 믿어주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식으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들을 잘 기록한다는 점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보여주면서 안심시키는 느낌이 있어요. 아람님이 말한 '잘 초대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런 기록을 통해 예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고요.
젤리장님은 어린아이부터 선생님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특히 취향이나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으셨을 텐데요. 공공의 이슈를 다루는 참여적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섬세한 소통 방식이 필요할 텐데,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이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고집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젤리장
저는 소통을 할 때 '모릅니다. 알려주세요.'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 이유는 제가 지역의 이슈를 다루다보니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 분들이 오시면 종종 처음부터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 "왜 소리 지르세요?"라고 대응하면, 절대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요.
저는 늘 제 역할을 명확히 정해요. "저는 캠페인 전문가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잘 다듬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선생님들이 필요합니다. 제게 말을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하죠. 그 순간 그분들은 자문위원이 된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도 자문위원 역할을 맡기기도 합니다. 어떤 복잡한 소통을 할 때 서로의 역할이 불분명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기획자로서의 제 역할과 그분들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리해요.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협업이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해리
흥미로운 표현이에요. 참석하신 분들이 사실 그 지역의 전문가이시고, 그분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드리면서 '이게 당신의 역할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함께하는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람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이들의 역할에 맞는 자리를 초대하고 계신 게 아닌가 싶어서 정말 재밌네요.
예상치 못한 순간과
마주하는 태도에 대하여
현장 참여 질문자
아람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아까 공간을 구성할 때 도로를 막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이 개인 사유지라서 가능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지자체의 허락을 받고 진행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아람
너무 좋은 질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약 32m 정도의 짧은 구간을 막고 공원화 작업을 시도했어요. 일단 적법하게 진행하자고 생각해서 사전에 경찰서에 갔습니다. 도로는 시 소유이기 때문에, 어떤 도로를 점유하려면 신고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경찰서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니, 그분이 황당해하시면서 길이가 너무 짧아서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이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음 민원이 신고되었고, 그때 경찰서에서가 아닌 유성구청의 시설관리과에서 저희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불필요한 적재물을 놓아 문제가 생겼으니 다 치워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힘들게 조성한 공간이라 억울하고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하지만 저희끼리는 이런 해프닝이 생긴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했고, 동네에서 그래도 알려진 것에 기뻐했어요.
결론적으로, 행사를 하고자 하는 날에는 먼저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는 도로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조항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혹은 "네, 정리할게요. 곧 끝나요."라는 문장을 외우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외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해리
연결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지역 사회나 공공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정말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잖아요. 내가 초대한 파트너들뿐만 아니라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소통도 필요하고, 예기치 않은 변수들도 많죠.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뭔가를 만들어낸 순간이 있었다면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젤리장 작가님,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 같아요!
젤리장
프로젝트가 다 에피소드입니다. 예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현장과 시민들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어떤 상황에 마주칠지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아요. 저와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은 대체로 방향성만 잡고 갑니다.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오히려 곤란해질 수 있죠. 예를 들어, 제가 진행했던 ‘공공 빗자루’ 프로젝트가 있어요. ‘내 집 앞 눈 쓸기 캠페인’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빗자루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담벼락에 공공 빗자루를 비치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죠. 그때 처음 들었던 반응이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죠?”라는 것이었어요.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 가져간다면 다시 채워 넣으면 되는 거죠. 누군가 가져가지 않을 때까지 채우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다른 동네 사람이 우리 동네까지 와서 이걸 가져갈 일은 거의 없어요. 우리 동네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겁니다.
저는 활동을 할수록 점점 더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런 순간에 저는 초긍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없으면 채우면 되고, 누가 가져갔다면 얼마나 좋았으면 자기 지역에서 시도해보려고 가져갔나보다 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게 정말 중요해요.
해리
아람님이 말씀하신, '경찰서에서 이렇게 오다니 성공인 걸' 했다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사고 방식인 것 같아서 너무 재밌네요.
종범
저희는 공공과의 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저희를 찾아오는 담당자들은 보통 적극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입니다. 감사하게도 저희를 잘 이해하고 지역에서 뭔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찾아오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과 협업할 때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데요. 헤드폰을 쓰고 서로의 말을 전하는 게임 있잖아요. 저는 문득 저희의 역할이 그중에서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공에서 정책이나 사업을 시작할 때 선한 의지와 좋은 취지에서 출발하지만, 여러 관계 부처 혹은 현실을 거치면서 점점 원래의 의미와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한테는 처음과 다소 멀어진 말이 전해질 때가 많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어떻게든 처음의 취지를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배로 노력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저희는 공공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의 중요성을 잊는 순간 일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의 취지와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 저희에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는 서류상으로는 의미를 되돌리기 이전보다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지역에 진짜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참여한 분들의 만족도는 오히려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람
일을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과의 예상치 못한 조우가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궁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소파를 길가에 두었는데, 한 할머니가 매일 찾아와서 그 소파를 달라고 하셨어요. 정말 간절하게 요청하시길래, 잊지 않고 꼭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죠. 근처에 사신다기에 프로젝트가 끝난 날, 소파를 3층까지 이고 지고 가서 드렸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내가 뭐라도 줄게"라고 하시며 고마워하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또, 야외에서 DIT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가끔 기웃거리시거나 만지작거리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때마다 "해보실래요? 재밌어요." 하고 말도 걸고 권유하는 편입니다.
문득 생각해보면, 사실 저는 창업하기 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붙이거나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DIT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람들과 더 쉽게 소통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이 날 도와주고 싶군요!'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나는 얼마든지 줄게!”라는 마음가짐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