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워크는 지난 몇년 동안 동인천 배다리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인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다들 우리처럼 헤매고, 삽질하고, 우당탕탕 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꿈꾸며 해나가고 있겠지?' 서로의 실험담을, 과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테스트 로컬 컨퍼런스>를 기획했습니다. 건축, 공공예술, 커뮤니티, 브랜드, 축제 등의 키워드로 내 곁의 일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특별한 현장이었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일 실험가들이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해 봅니다.
세번째 일 실험가, 공공 캠페이너 젤리장
공공공간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적절한 미디어에 담아 전달하는 '공공캠페이너'입니다.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을 만나 새로운 담론에 이웃을 관여시키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캠페인 시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공공캠페인, 공공디자인, 공공예술, 문화기획 등 다양한 장르와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모든 작업은 시민과 함께 메시지와 미디어를 고민하는 '소통'에 무게를 두고 작업합니다.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
지역 사회의 문제를 시민과 함께 바라보고, 다루고, 해결한 젤리장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일상의 문제를 공론화 하여 공공 문제의 담론으로 제시하기도, 개인이 다루기에 버거워 보였던 사회문제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작게 다루는 실천을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공공예술, 공공디자인, 공공캠페인 등 영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민이 지역 사회 한복판에 자연스럽고 새롭게 그리고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 이야기합니다.

공공문제를 다루며 말을 거는 사람, 공공캠페이너
공공캠페이너 젤리장입니다. 공공캠페이너는 공공문제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니는데요. 캠페인적 관점을 갖고 말을 거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를 두고 소통할 때 결국 그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를 꺼내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리고 말을 어디다가 담아야 가장 잘 전달이 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저는 각각을 메시지와 미디어라고 부르는데요. 즉,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이고, 어디에 담아내면 가장 적절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앞으로 소개할 사례를 보면, '저거 좀 별거 아닌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괜찮아 보인다'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바로 요즘 말하는 공공 캠페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천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저는 모든 시민들을 잠재적 실천가로 보고 있습니다. 특정 전문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접근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뭔가를 시도해내려는 적극적인 시민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례1. 광화문 앞 광역버스 정류장
제가 최초로 공공 캠페인을 했던 사례를 소개해 드릴게요. 10년 전에 광화문 앞 광역버스 정류장에는요.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의 보행이 어려웠어요. 모두가 느끼는 불편함이었죠. 그때 저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시도했던 게 저의 첫 번째 공공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약속 증표를 바닥에 만든 것입니다. 괄호와 화살표 하나였어요. 사람들이 서 있어야 할 공간은 괄호로 표시했습니다. 괄호와 괄호 사이에는 화살표를 표시해 두었는데요. 보행자가 지나다닐 공간을 표시해둔 겁니다. 서로가 부딪힐 필요가 없어진 거죠. 작은 표시 하나로 우리만의 질서와 규범을 만든 거예요.
제가 이 사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아이디어가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확산됐느냐의 측면입니다. 저는 이 활동을 SNS에 되게 열심히 기록했어요. 공감이나 응원과 함께 어떤 반응이 제일 많이 나왔냐면, 본인들의 지역에서도 해달라는 말이었어요. 여건 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저는 대신 저의 노하우와 디자인을 다 올렸습니다.
그러자 강원도의 한 보건소 진료 대기실, 그리고 광주광역시의 고등학교 급식실 앞에 똑같은 모양의 줄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제가 말하는 시민력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제안한 것들이 자신의 지역에 맞는 방식으로 계속 활용되고 확산되는 것.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프로젝트의 중요한 지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례2. 경의선 숲길 공원
첫 번째 프로젝트 이후 경의선 숲길 공원 주민분들이 도움을 요청하셨어요. 이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뭐였냐면 경의선 숲길이 유명해지면서 많은 소음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곳에 사는 많은 이웃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고쳐지지 않는 문제였어요. 소음을 신고해도, 공사장 소음이 생활 소음의 기준이기 때문에 제재를 할 수 없는 실정이었어요. 현수막을 엄청나게 붙였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고요.
저는 이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들어가면서 SNS으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모여서 다 같이 잠옷을 입고 베개 30개를 공원 곳곳에 걸기 시작했어요. 이런 넘버벌 퍼포먼스를 2주 동안 진행했는데요. 이 베개의 표지에는 '나는 잠이 들고 싶다'라고 쓰여있고, 당시 연남동 주민 88명의 편지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단 특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관심을 갖게 되고요, 베개에 적힌 메시지를 보게 되는 거죠.
경의선 숲길에 오는 분들은 놀러 오는 외지인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소음 문제를 얘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이겁니다. "왜요? 공원에서 좀 떠들면 안 돼요?" 자유롭게 활용해도 되는 이 공원에서 왜 떠들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고자 했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 라는 포인트였어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어떤 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는지,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놀러오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사진제공] 젤리장
사례3. 서울숲
그다음은 서울숲 사례예요. 서울숲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다양한 공공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중 하나가 쓰레기 투기 문제였습니다. 당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민협의체와 논의하는 공론장이 한 번 있었는데요, 화를 내시는 분들을 보며 이 문제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를 좌대 위로 올리는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5일 동안 서울 숲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좌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치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관하는 것처럼요. 2시간마다 한 번씩 실시간으로 쓰레기가 바뀝니다. 작품이 바뀌는 것이지요. 이렇게 올라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한 작품의 이름은 ‘서울숲 4번 출입구에서 버려진 말보로 레드갑과 베스킨라빈스 스푼’입니다.
그냥 올려두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좌대 옆에 쓰여 있는 설명을 읽어보기 시작하는 것이 공론회에 초대하는 작업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싶으시면 이 모임에 참석해서 의견을 얘기해주세요'라는 하나의 초대장 같은 겁니다.

[사진제공] 젤리장
사례4. 안산시 석수초등학교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안을 다룰 수 있는 관점과 방식은 굉장히 다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안산시 석수초등학교의 사례를 들 수 있는데요. 석수초등학교가 있던 곳은 인근과 비교해서 문화적 인프라가 굉장히 부족한 동네였습니다. 석수초등학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6년 전에 학교 담벼락을 허물었어요. 데크와 벤츠를 설치해서 이웃들에게 해당 공간을 공유한 겁니다. 좋은 취지였지만 10년이 지나자 이웃 간의 큰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아침에 청소 담당하는 학생들이 막걸리병과 소주병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었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학교에서 작은 공청회가 열립니다. 학교와 학부모는 담벼락을 무조건 다시 세우기를 원했어요. 이 공간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우리가 관리할테니 담벼락을 세우지 말라고 대립하고 있었고요. 이게 바로 갈등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시설과 제도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예산을 집행하고, 절차를 거쳐야 하는 대단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거죠.
저는 이분들에게 관점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저의 제안은 담벼락을 한번 세워보자는 겁니다. 그러나 조건이 두 개가 있습니다. 우선, 보름 동안만 설치되는 임시 담벼락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 담벼락은 제가 지정한 특정 소재로 만든 것이어야 합니다. 수산시장에 흔히 쓰이는 흐물흐물한 PBC 소재의 비닐인데요. 이걸 써서 노란 색깔의 투명한 담벼락이 되는 거죠.

[사진제공] 젤리장
아이들이 우리에게 내어준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아이들이 있는 우리들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공간의 핵심은 원래 지나다녔던 동선을 막아 불편하게 만들면서 시선은 차단하지 않는 점이었어요. 마커를 둬서 양쪽 벽면에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쓸 수 있도록 했는데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제발 이 공간을 유지해달라는 동네 어르신들의 하소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쓰여졌습니다. 동네에 살고 계신 캠핑 매니아께서 무선 조명을 제공해주셨는데요. 이 공간에 애착이 생기면서 동네의 문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죠. 철거 전에 도서관 관장님께서 해당 공간에서 행사를 열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점심시간 동안 도서관 측에서 직접 주최한 열림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학부모들이 동아리 공연을 펼치고,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면 좋겠는지를 논의하는 작은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약속한대로 임시 담벼락을 철거한 이후에도, 최종적으로 담벼락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데크와 벤치를 리뉴얼하는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 사례를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은,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할 때 시설이나 제도보다 소통과 관계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담을 세우거나 세우지 말자와 같은 시설적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지속 가능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접근이 제가 말하는 캠페인적 관점의 핵심입니다.
사례5.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아무도 걷지 않는 공원이었어요. 옛날에 지어진 곳이라 담벼락이 2m 30cm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아요.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담벼락을 둘러 가야 하니 불편한 거죠. 게다가 공원 앞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의 노상 주차장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화물 차량이 쭉 주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으슥한 공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노상 방뇨 장소가 되어버린 거예요. 지린내가 심하고, 너무 어둡다보니 아무도 걷지 않게 된 겁니다.
이웃 주민들과 함께 효창공원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혹시 다들 담벼락을 넘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셨다면, 효창공원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고 얘기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도로변 주차장을 공원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주차장 한 칸을 빌려서 벤치를 놓는 거죠. 벤치에 바퀴가 달려 있기 때문에 주차장 곳곳으로 이동시키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벤치를 놓는 것을 넘어 주민들과 '이상한 산책'이라는 이름의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이름 그대로 이상하게 산책해보는 겁니다. 뒤를 돌아보며 걷거나, 거울을 보면서 걷기도 했고요. 밤에는 손전등을 비추면서 조도가 낮은 곳들을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일부러 불편하게 걸어보며 얼마나 불편했는지 이야기하는 워크숍이었는데요. 수백 명이 모인 공론장은 아니었지만, 문제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여론을 조성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공론장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제공] 젤리장
사례6. 탈전북/ 탈태백 캠페인
지역사회마다 다양한 어젠다들이 있습니다. 요즘 제일 많이 나오고 있는 어젠다는 지방 소멸이나 인구유출과 같은 이야기일 거예요. 왜 청년들은 지역에서 나가는 걸까요? 어떤 지역만 벗어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느끼는 마음은 어떤 결핍과 욕망에서 시작된 걸까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주 사회혁신센터 1층에 있는 공공카페와 탈전북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지역을 벗어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지역은 무엇인지, 지역에서 벗어난다는 건 결국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걸 뜻하는지. 종이에 이런 것들을 적고 공유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작업을 통해 전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양성의 부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시기도 했어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추후 같은 주제로 태백에서도 진행되었습니다.

사례7. 안심드림길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은 보차 혼용도로가 많아 사고율이 높았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안심드림길’이라는 수백 억 단위의 도로개선 사업이 계획되었는데요, 공청회가 3년간 무산되며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어요. 그 사이 5살 아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통과 의식을 개선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민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 생겨도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죠.
암사동에는 당시 17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되게 많은 수인데요. 그 많은 아이들이 매일 한 번씩은 야외활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 동네 곳곳에서 계속해서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교적 큰 어린이집은 자체 놀이터가 있지만, 영세한 곳은 외부로 나가야 하니 위험에 더 노출되는 거죠.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할 때마다 노란 깃발을 드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2주 동안 동네 곳곳에서 노란 깃발 물결이 이어졌어요.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근처 상인들도 리플렛과 포스터를 통해 협조했습니다. 토요일에는 5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모여 학부모들과 함께 동네를 걸어가는 가장 행렬을 시작했어요.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의 공청회 참여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계속 미뤄지고 있던 공청회에 새로운 주체들이 참여하게 된 거죠. 반차나 월차를 내며 공청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제일 먼저 한 이야기는, 1시에 공청회를 하면 어떻게 참여하냐는 거였어요. 우리가 참여하면서 반드시 전달해야 할 목소리인 거죠.

잠재적 실천가들이 더 많아지는 지역을 상상해보기
사례들을 보면서 흥미롭거나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들이 있었을 텐데요. 저는 특정 전문가의 전문성보다 시민들이 경험을 통해 관점을 바꾸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실천가가 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연사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요.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도해보는 잠재적 실천가들이 늘어나는 지역의 가능성을 상상해봅니다.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
세번째 일 실험가, 공공 캠페이너 젤리장
공공공간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적절한 미디어에 담아 전달하는 '공공캠페이너'입니다.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을 만나 새로운 담론에 이웃을 관여시키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캠페인 시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공공캠페인, 공공디자인, 공공예술, 문화기획 등 다양한 장르와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모든 작업은 시민과 함께 메시지와 미디어를 고민하는 '소통'에 무게를 두고 작업합니다.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
공공문제를 다루며 말을 거는 사람, 공공캠페이너
공공캠페이너 젤리장입니다. 공공캠페이너는 공공문제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니는데요. 캠페인적 관점을 갖고 말을 거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를 두고 소통할 때 결국 그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를 꺼내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리고 말을 어디다가 담아야 가장 잘 전달이 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저는 각각을 메시지와 미디어라고 부르는데요. 즉,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이고, 어디에 담아내면 가장 적절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앞으로 소개할 사례를 보면, '저거 좀 별거 아닌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괜찮아 보인다'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바로 요즘 말하는 공공 캠페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천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저는 모든 시민들을 잠재적 실천가로 보고 있습니다. 특정 전문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접근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뭔가를 시도해내려는 적극적인 시민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례1. 광화문 앞 광역버스 정류장
제가 최초로 공공 캠페인을 했던 사례를 소개해 드릴게요. 10년 전에 광화문 앞 광역버스 정류장에는요.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의 보행이 어려웠어요. 모두가 느끼는 불편함이었죠. 그때 저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시도했던 게 저의 첫 번째 공공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약속 증표를 바닥에 만든 것입니다. 괄호와 화살표 하나였어요. 사람들이 서 있어야 할 공간은 괄호로 표시했습니다. 괄호와 괄호 사이에는 화살표를 표시해 두었는데요. 보행자가 지나다닐 공간을 표시해둔 겁니다. 서로가 부딪힐 필요가 없어진 거죠. 작은 표시 하나로 우리만의 질서와 규범을 만든 거예요.
제가 이 사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아이디어가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확산됐느냐의 측면입니다. 저는 이 활동을 SNS에 되게 열심히 기록했어요. 공감이나 응원과 함께 어떤 반응이 제일 많이 나왔냐면, 본인들의 지역에서도 해달라는 말이었어요. 여건 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저는 대신 저의 노하우와 디자인을 다 올렸습니다.
그러자 강원도의 한 보건소 진료 대기실, 그리고 광주광역시의 고등학교 급식실 앞에 똑같은 모양의 줄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제가 말하는 시민력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제안한 것들이 자신의 지역에 맞는 방식으로 계속 활용되고 확산되는 것.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프로젝트의 중요한 지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례2. 경의선 숲길 공원
첫 번째 프로젝트 이후 경의선 숲길 공원 주민분들이 도움을 요청하셨어요. 이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뭐였냐면 경의선 숲길이 유명해지면서 많은 소음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곳에 사는 많은 이웃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고쳐지지 않는 문제였어요. 소음을 신고해도, 공사장 소음이 생활 소음의 기준이기 때문에 제재를 할 수 없는 실정이었어요. 현수막을 엄청나게 붙였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고요.
저는 이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들어가면서 SNS으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모여서 다 같이 잠옷을 입고 베개 30개를 공원 곳곳에 걸기 시작했어요. 이런 넘버벌 퍼포먼스를 2주 동안 진행했는데요. 이 베개의 표지에는 '나는 잠이 들고 싶다'라고 쓰여있고, 당시 연남동 주민 88명의 편지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단 특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관심을 갖게 되고요, 베개에 적힌 메시지를 보게 되는 거죠.
경의선 숲길에 오는 분들은 놀러 오는 외지인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소음 문제를 얘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이겁니다. "왜요? 공원에서 좀 떠들면 안 돼요?" 자유롭게 활용해도 되는 이 공원에서 왜 떠들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고자 했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 라는 포인트였어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어떤 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는지,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놀러오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사진제공] 젤리장
사례3. 서울숲
그다음은 서울숲 사례예요. 서울숲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다양한 공공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중 하나가 쓰레기 투기 문제였습니다. 당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민협의체와 논의하는 공론장이 한 번 있었는데요, 화를 내시는 분들을 보며 이 문제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를 좌대 위로 올리는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5일 동안 서울 숲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좌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치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관하는 것처럼요. 2시간마다 한 번씩 실시간으로 쓰레기가 바뀝니다. 작품이 바뀌는 것이지요. 이렇게 올라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한 작품의 이름은 ‘서울숲 4번 출입구에서 버려진 말보로 레드갑과 베스킨라빈스 스푼’입니다.
그냥 올려두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좌대 옆에 쓰여 있는 설명을 읽어보기 시작하는 것이 공론회에 초대하는 작업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싶으시면 이 모임에 참석해서 의견을 얘기해주세요'라는 하나의 초대장 같은 겁니다.
[사진제공] 젤리장
사례4. 안산시 석수초등학교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안을 다룰 수 있는 관점과 방식은 굉장히 다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안산시 석수초등학교의 사례를 들 수 있는데요. 석수초등학교가 있던 곳은 인근과 비교해서 문화적 인프라가 굉장히 부족한 동네였습니다. 석수초등학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6년 전에 학교 담벼락을 허물었어요. 데크와 벤츠를 설치해서 이웃들에게 해당 공간을 공유한 겁니다. 좋은 취지였지만 10년이 지나자 이웃 간의 큰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아침에 청소 담당하는 학생들이 막걸리병과 소주병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었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학교에서 작은 공청회가 열립니다. 학교와 학부모는 담벼락을 무조건 다시 세우기를 원했어요. 이 공간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우리가 관리할테니 담벼락을 세우지 말라고 대립하고 있었고요. 이게 바로 갈등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시설과 제도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예산을 집행하고, 절차를 거쳐야 하는 대단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거죠.
저는 이분들에게 관점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저의 제안은 담벼락을 한번 세워보자는 겁니다. 그러나 조건이 두 개가 있습니다. 우선, 보름 동안만 설치되는 임시 담벼락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 담벼락은 제가 지정한 특정 소재로 만든 것이어야 합니다. 수산시장에 흔히 쓰이는 흐물흐물한 PBC 소재의 비닐인데요. 이걸 써서 노란 색깔의 투명한 담벼락이 되는 거죠.
[사진제공] 젤리장
아이들이 우리에게 내어준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아이들이 있는 우리들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공간의 핵심은 원래 지나다녔던 동선을 막아 불편하게 만들면서 시선은 차단하지 않는 점이었어요. 마커를 둬서 양쪽 벽면에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쓸 수 있도록 했는데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제발 이 공간을 유지해달라는 동네 어르신들의 하소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쓰여졌습니다. 동네에 살고 계신 캠핑 매니아께서 무선 조명을 제공해주셨는데요. 이 공간에 애착이 생기면서 동네의 문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죠. 철거 전에 도서관 관장님께서 해당 공간에서 행사를 열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점심시간 동안 도서관 측에서 직접 주최한 열림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학부모들이 동아리 공연을 펼치고,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면 좋겠는지를 논의하는 작은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약속한대로 임시 담벼락을 철거한 이후에도, 최종적으로 담벼락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데크와 벤치를 리뉴얼하는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 사례를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은,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할 때 시설이나 제도보다 소통과 관계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담을 세우거나 세우지 말자와 같은 시설적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지속 가능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접근이 제가 말하는 캠페인적 관점의 핵심입니다.
사례5.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아무도 걷지 않는 공원이었어요. 옛날에 지어진 곳이라 담벼락이 2m 30cm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아요.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담벼락을 둘러 가야 하니 불편한 거죠. 게다가 공원 앞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의 노상 주차장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화물 차량이 쭉 주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으슥한 공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노상 방뇨 장소가 되어버린 거예요. 지린내가 심하고, 너무 어둡다보니 아무도 걷지 않게 된 겁니다.
이웃 주민들과 함께 효창공원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혹시 다들 담벼락을 넘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셨다면, 효창공원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고 얘기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도로변 주차장을 공원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주차장 한 칸을 빌려서 벤치를 놓는 거죠. 벤치에 바퀴가 달려 있기 때문에 주차장 곳곳으로 이동시키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벤치를 놓는 것을 넘어 주민들과 '이상한 산책'이라는 이름의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이름 그대로 이상하게 산책해보는 겁니다. 뒤를 돌아보며 걷거나, 거울을 보면서 걷기도 했고요. 밤에는 손전등을 비추면서 조도가 낮은 곳들을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일부러 불편하게 걸어보며 얼마나 불편했는지 이야기하는 워크숍이었는데요. 수백 명이 모인 공론장은 아니었지만, 문제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여론을 조성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공론장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제공] 젤리장
사례6. 탈전북/ 탈태백 캠페인
지역사회마다 다양한 어젠다들이 있습니다. 요즘 제일 많이 나오고 있는 어젠다는 지방 소멸이나 인구유출과 같은 이야기일 거예요. 왜 청년들은 지역에서 나가는 걸까요? 어떤 지역만 벗어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느끼는 마음은 어떤 결핍과 욕망에서 시작된 걸까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주 사회혁신센터 1층에 있는 공공카페와 탈전북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지역을 벗어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지역은 무엇인지, 지역에서 벗어난다는 건 결국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걸 뜻하는지. 종이에 이런 것들을 적고 공유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작업을 통해 전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양성의 부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시기도 했어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추후 같은 주제로 태백에서도 진행되었습니다.
사례7. 안심드림길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은 보차 혼용도로가 많아 사고율이 높았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안심드림길’이라는 수백 억 단위의 도로개선 사업이 계획되었는데요, 공청회가 3년간 무산되며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어요. 그 사이 5살 아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통과 의식을 개선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민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 생겨도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죠.
암사동에는 당시 17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되게 많은 수인데요. 그 많은 아이들이 매일 한 번씩은 야외활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 동네 곳곳에서 계속해서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교적 큰 어린이집은 자체 놀이터가 있지만, 영세한 곳은 외부로 나가야 하니 위험에 더 노출되는 거죠.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할 때마다 노란 깃발을 드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2주 동안 동네 곳곳에서 노란 깃발 물결이 이어졌어요.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근처 상인들도 리플렛과 포스터를 통해 협조했습니다. 토요일에는 5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모여 학부모들과 함께 동네를 걸어가는 가장 행렬을 시작했어요.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의 공청회 참여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계속 미뤄지고 있던 공청회에 새로운 주체들이 참여하게 된 거죠. 반차나 월차를 내며 공청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제일 먼저 한 이야기는, 1시에 공청회를 하면 어떻게 참여하냐는 거였어요. 우리가 참여하면서 반드시 전달해야 할 목소리인 거죠.
잠재적 실천가들이 더 많아지는 지역을 상상해보기
사례들을 보면서 흥미롭거나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들이 있었을 텐데요. 저는 특정 전문가의 전문성보다 시민들이 경험을 통해 관점을 바꾸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실천가가 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연사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요.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도해보는 잠재적 실천가들이 늘어나는 지역의 가능성을 상상해봅니다.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