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의미 있는 장소 만들기 비법, DIT

패치워크는 지난 몇년 동안 동인천 배다리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인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다들 우리처럼 헤매고, 삽질하고, 우당탕탕 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꿈꾸며 해나가고 있겠지?' 서로의 실험담을, 과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테스트 로컬 컨퍼런스>를 기획했습니다. 건축, 공공예술, 커뮤니티, 브랜드, 축제 등의 키워드로 내 곁의 일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특별한 현장이었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일 실험가들이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해 봅니다.


첫번째 일 실험가, 채아람 (스튜디오 우당탕탕 대표)

세종·대전에 기반한 '스튜디오 우당탕탕'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공예술을 공부한 후 서울, 독일 바이마르, 세종, 전북 군산 등 다양한 도시의 삶을 관찰하며 도시 프로젝트를 참여하고 기획했습니다. 후미진 동네, 일상적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기후위기 · 인구위기 시대 즐거운 도시를 만들어가는 참여적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장소 만들기 비법, DIT


쇠퇴된 원도심 지역의 낡은 공간을 여러 주체가 매력적인 장소로 함께 고쳐나가는 'DIT(Do It Together, 함께 만들기)' 리노베이션을 소개합니다. 대전, 세종,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DIT워크숍을 기획하는 스튜디오 우당탕탕이 창의적인 공동작업을 매개로 의미있는 장소를 만드는 현장의 이야기와 관점을 나눕니다.


<테스트 로컬 컨퍼런스> 현장의 아람님!


함께 만들기, DIT(Do It Together)!

DIY(Do It Yourself)는 많이 들어보셨죠? DIY가 혼자 만들기라면, DIT는 함께 만들기를 뜻합니다. 함께 만들기는 말 그대로 같이 작업하는 방식이에요. 좀 더 큰 규모의 작업을 할 수 있겠죠. 저희 같은 경우는 공간을 함께 만듭니다. 제가 운영하는 DIT 워크숍에서는 공간 운영자, 건물주, 지역 주민, 외지인이 시공 전문가와 함께 유휴공간을 매력적인 장소로 만듭니다. 공구 사용법부터 실제로 공간을 만드는 법을 다 배우게 되고요, 실력과 관계없이 모든 참여자가 시공 작업에 참여합니다.


[사진 제공] 스튜디오 우당탕탕


'공간'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주는 DIT의 매력

DIT의 세 가지 포인트는 이야기, 친구들, 그리고 애착감이에요. 공동작업의 매력은요, 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하잖아요. 점차 말이 트이면서 처음엔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쉬는 시간에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면서 점점 친해지는 거죠. 함께 작업한 참여자들 사이에서 유대감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과정이 되게 즐거운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함께 만든 것으로 이 동네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비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에 대한 즉각적인 애정도 갖게 돼요. 그게 공간이라면, '나 저거 만들 때 같이 있었는데' 하면서 그 공간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요. 아마 저희가 작업한 것들이 전문가가 보기엔 많이 모자라게 느껴질 거예요. 그렇더라도 우리가 함께 작업하면서 만들어진 에피소드들이 완성된 공간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외주로 작업을 맡겼을 때와 완성된 물건이나 공간에 대한 애착감이 완전히 다르겠죠.

 


지역과 사람 사이를
관계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 DIT

제가 가는 곳들은 쇠퇴했거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들이 많은데요. 사실 쇠퇴한 지역으로 사람이 오게 만드는 건 되게 어려운 미션이에요. 도대체 어떤 공간으로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마 '꼭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사람들이 오겠죠? 그 점에 있어서 이제 디자인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저희는 빼어나게 멋진 것을 이미 많이 보았거든요. 이때 필요한 것은 정말 '나다운 공간',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 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나다운 공간'입니다. 지방에 가면 '우리 동네는 뭐 없어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는데요. 저는 가구든 공간이든 나 혹은 우리가 직접 만든 무언가가 지역의 매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인테리어를 맡겨본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소통을 열심히 해도 결과물이 내 생각과 다를 때가 많아요. 여러 사람이 참여하다 보면 소통의 실패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런데 현장에서 끝까지 내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저는 직접 시공에 참여하며 작업하는 DIT가 '나다운 공간을 만드는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 또한 중요합니다. 공간을 오픈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공사 현장에 참여하면, 그 사람들이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되죠. 그곳에 다시 돌아올 계기를 이미 만들고 있는 겁니다. 지역적인 차원에서 보면 쇠퇴한 지역에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계기가 되죠. '생활인구' 혹은 '관계인구'라고도 부르는데요. 최근 강릉 DIT 워크숍에서도 잘 맞는 사람들이 계속 뭉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참여자가 기획자가 되거나, 해당 지역으로 이주해오는 경우도 생기고요.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이렇게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어요. 이런 논의들이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아서 작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DIT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에 변화를 만드는
작은 실험의 의미

작은 실험들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대두되고 있죠. 도시 설계 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를 '택티컬 어바니즘'이라고 부르는데요. '전술적 도시 설계 방법론'을 뜻해요. 돈이 들어가지 않는 방식으로 잠깐 환경을 바꿔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게 정말 작동을 하는지 반응을 확인하면서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서 도시의 변화들을 만들어왔어요. 요즘은 시민활동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들이 많습니다. 단기적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시나 관계자들과 논의해 장기적인 변화를 도모해보는 거죠. 말하자면 합의하고 나서 실행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실행해보면서 합의를 하는 거예요. 그런 프로젝트를 저희가 진행한 사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대전 유성구 궁동에 살고 있는데요. 차가 정말 많아요. 충남대 입구 쪽에는 차선이 정말 많습니다. 이렇게 차 중심적인 도시가 되면 보행자 입장에서는 다녀야 하는 길이 뚝뚝 끊기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불편하기도 하고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거실 같은 공간이 동네에도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 수많은 길 중에 조금이라도 같이 뭉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있으면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야외 활동이 많은 활동적인 궁동을 만들어보자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앞으로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해 보려고 '궁동활동'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저희가 바꾸고자 한 곳은 상가 두 곳이 맞붙어 있는 길인데요. 약 30m 정도의 구간입니다. 해당 구간을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막고, 잔디 공원으로 바꾸기로 했어요. 일본으로 선진지 답사를 다녀오기도 하고, 사전에 주변 가게들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건축학과 친구들과 미리 가구 배치를 해보면서 어떤 공간으로 바꿀지 논의했어요. 준비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통행하던 길을 3일간 잔디 공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야외 공연과 같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습니다. 


[사진 제공] 스튜디오 우당탕탕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은 길에서 많이 주워왔어요. 수리가 필요한 건 고치기도 했고요. 물건들을 많이 빌려오기도 했는데요. 의자는 주변 건축학과 학생들이 만든 걸 빌려왔고, 바나나 나무도 주변 학교에서 빌려왔어요. 저는 지역자원이라는 게 꼭 대단한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쓰레기로 여겨졌던 물건들이 이렇게 잘 활용하면 지역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택티컬 어바니즘의 개념처럼, 이렇게 시도한 자료가 축적되면 장기적인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원래는 그냥 차만 다니던 길이었는데 이렇게 바꿔보니 사람들이 얼마나 더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새로운 행위들이 생겨났는지 확인하는 거죠. 히트맵이나 다양한 통계자료를 만들어서 데이터를 쌓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를 선호한다든지 어떠한 의견을 수립하게 되면 시나 구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볼 수 있는 거죠.


개인의 창의성을 동네, 지역, 
도시공간으로 연결하는 일

티셔츠를 혼자 집에서 만들면 단순히 나의 DIY 프로젝트로 끝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밖에서 입으면 하나의 무브먼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원래 저 혼자서 해오던 일을 동네나 지역, 도시와 연결하는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 에드워드 렐프


이 40년도 더 된 이 문구가 저는 여전히 좋은데요. 저는 개인의 창의성이 밖으로 드러났을 때, 그 역시도 지역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런 과정들을 시도해보고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획 | 패치워크
기록·편집 | 김한별, 강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