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들어 있던 약방을 깨우다
Q. 7년 전, 배다리로 돌아와 시아버님이 운영하셨던 이십세기약방 건물을 정돈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대략 6~7년 전이었죠? 당시 배다리는 제게 미지의 동네였지만 무언가 바뀔 가능성이 많은 동네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어요. 다만 그때까지는 약방 건물을 우리 집안에서 소유만 하고 있던 그런 상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의 학예사 선생님이 <추억 속 우리 집에 가다〉라는 기획전을 통해 이십세기약방 건물을 소개하고 싶다며 찾아오신 일이 있었어요. 옛날에는 인근 고등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약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그런 추억이 있는 공간이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거미줄만 잔뜩 있고 그런 상태가 아쉽던 참이었거든요. 마침 남편이 1 년 정도 휴식기를 갖고 있기도 했고, 저 역시 건물에 애정을 쏟기 시작하면서 약방 건물을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어요.


Q. 여러 가지 상황과 시기가 절묘하게 잘 맞물린 결과였네요.
남편은 그동안 한의사로 대학병원에서 오랜 기간 일해왔고요. 대학 병원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었죠. 그런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들기도 했고, 자녀들도 하나하나 각자의 길을 찾아 나가면서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마침 그 시기에 갖고 있던 약방 건물과 그 안에 놓인 아꼈던 물건과 독특한 자재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제안해 오신 게 저희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 준 거죠. 그래서 이 약방에서 목적을 갖고 열심히 무언가를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Q. 소중한 건물을 되살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처음 시작할 때는 여기저기 손 볼 데가 굉장히 많았고 설렘도 있지만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많아서 용기가 많이 필요했어요. 지금이야 배다리 초입에 카페도 들어서고 이런저런 예술 공간들이 생겨났지만, 당시만 해도 어딘가 적막하고 무서운 느낌 이었거든요. 그래도 안쪽 골목에 들어서면 편안하고 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요. 특히 이십세기약방 건물 앞에 서면 건물만의 단아한 형태와 이렇게, 저렇게 다듬어보고 싶다는 그런 의욕과 설렘이 생기니까 그때부터는 서울과 인천을 열심히 오가기 시작했어요.
Q. 본격적인 공사 단계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면서요?
마음이 맞는 건축가를 찾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다수 맡아서 진행해 온 건축사사무소와 이야기 를 나눴는데, 건물의 노후화가 심하니 철거 후 새로운 건물을 짓자고 권하시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저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일천해서 일단 승낙했는데, 설계 도면이 어떻게 봐도 배다리와 어울리지 않는 거예요. 저는 무엇보다 동네와 어울리는 방향으로 공간을 다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설계를 몇 번이나 수정해 봤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설계비를 드리고 작업을 중단했어요.
Q. 건축주와 원만하게 소통하면서 뜻하는 방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건축사를 만나는 과정도 결코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사실 건축사분들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 주셨죠. 다만 건축물을 보는 관점과 지향하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당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공사 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건물을 이용하고 관리해야 하는 입 장이니까요. 이후에는 오래된 건물을 재생하는 작업을 위주로 하시는 다른 건축사분께도 설계를 요청드렸는데, 기획 방향은 좋았지만 다소 과감한 설계를 제안하셔서 마찬가지로 설계비를 드리고 작업을 매듭짓게 되었어요.
Q. 그렇다면 약방 공사는 직접 진행하신 건가요?
건축사분들과 소통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을 무렵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그게 나름대로 공부가 많이 되었죠. 공간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했는데요. 약방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제 경험과 느낌을 믿고 직접 일관성 있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제가 직접 설계 도면을 들고 시공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제가 생각하는 기획 방향을 디자인적으로 잘 구현해 주실 수 있는 시공사를 만날 수 있었고 시공사 사장님, 그리고 현장 담당 반장님과 소통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해 나갔어요. 물론 공사 기간에는 저도 매일 아침 현장으로 출근했고요. 원래는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일해 주시는 분들과 현장에서 같이 먹던 짜장면은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하더라고요. (웃음)
보존하고, 다듬으며
Q. 지금의 약방 건물을 보면 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신 부분이 정말 많았겠네요.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기로 한 이상 불가피한 부분이죠. 공간에 는 무엇을 어떻게 갖다 놓을 거고, 정원 바닥은 이렇게 뚫어냈으면 좋겠다, 그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챙겼어요. 무엇보다 정원을 만드는 과정에 각별히 신경 썼는데요. 서울 양재동 꽃 시장에서 식물들을 하나하나 고르고 구매한 다음 배다리로 가져와 직접 심었어요. 철마다 한 식물이 꽃을 피우고 나면 그다음에는 다른 친구가 꽃을 피우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는 정원을 생각했고요. 처음에는 돌아서면 일이었는데 이젠 자리가 잡히고 어느덧 익숙해졌네요.

Q. 그러면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요?
착공할 무렵의 공간 트렌드는 노출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거친 질감의 인테리어였어요. 그래서 저도 처음 약방을 고치고자 결심했을 때는 그런 인테리어를 시도해 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옛 건물이기 때문에 구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그런 욕심을 누르고 인테리어는 정갈하게 정돈하자고 결심 했어요. 일단은 한의원으로 활용하는 이상 공간은 정갈한 느낌이 어 울린다 생각했고요. 트렌드는 계속해서 바뀌는데, 건물을 오래오래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둔다면 단정한 방식이 좋겠다고 판단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Q. 오랜 건물을 재생하는 작업은 특히 무엇을 그대로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굉장히 큰 고민이죠. 아무래도 배다리에서 이 건물이 가진 상징성이 있다 보니 공사 펜스를 치는 순간부터 마을 분들의 이목이 집중되 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약방 건물에 있던 우물을 없애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신 분들도 있고, 옥상 정원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죠. 그런데 건물을 재생하고 직접 활용해야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우물을 그대로 두면 무엇보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크고요. 최소한의 주차 공간을 확보를 위해서도 아쉽지만 없앨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오랜 건물일수록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방수가 중요한데, 실사용을 염두에 두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도 옥상정원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어요.

Q. 같은 맥락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지역이나 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다리에서 이런 부분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무엇보다 마음을 열고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다리에 들어오는 젊은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나이 드신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자세를 갖고 정착하거든요. 상식적으로 아무나 이 동네에 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걸 이해해야 해요. 젊은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게 많은 경우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죠. (웃음)
그리고 손맛 좋은 음식점이 몇 개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큰 규모일 필요도 없고요. 소박하게 주간에만 영업해도 요즘은 인스타를 통해 소문도 금방 돌고, 그러다 보면 마을에 훨씬 더 생기가 돌 것 같거든요. 물론 중식당도 좋지만 매일매일 먹기에는 부담스럽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Q. 그럼 반대로 배다리에서 꼭 지켜졌으면 하는 공간이나 문화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지역에 멋진 건축물이 여럿 있었는데 그게 온전히 보존되지 못한 게 제일 안타깝죠. 특히 인근의 세탁소 건물의 타일과 벽돌이 참 아름다웠는데요. 도시재생 사업을 시행하면서 외장재를 지금의 붉은 벽돌로 바꾸었고, 그러다 보니 건물의 매력이 반감되었어요. 또, 지금은 성냥박물관이 된 우체국 역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보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요. 이외에도 건물 얘기를 하자면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 참 많았는데요. 그나마 동성한의원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잘 운영되고 있어서 청산별곡님에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인터뷰 | 김영진
편집 | 강필호
사진 | 장비치, 백승균
잠들어 있던 약방을 깨우다
Q. 7년 전, 배다리로 돌아와 시아버님이 운영하셨던 이십세기약방 건물을 정돈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대략 6~7년 전이었죠? 당시 배다리는 제게 미지의 동네였지만 무언가 바뀔 가능성이 많은 동네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어요. 다만 그때까지는 약방 건물을 우리 집안에서 소유만 하고 있던 그런 상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의 학예사 선생님이 <추억 속 우리 집에 가다〉라는 기획전을 통해 이십세기약방 건물을 소개하고 싶다며 찾아오신 일이 있었어요. 옛날에는 인근 고등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약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그런 추억이 있는 공간이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거미줄만 잔뜩 있고 그런 상태가 아쉽던 참이었거든요. 마침 남편이 1 년 정도 휴식기를 갖고 있기도 했고, 저 역시 건물에 애정을 쏟기 시작하면서 약방 건물을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어요.
Q. 여러 가지 상황과 시기가 절묘하게 잘 맞물린 결과였네요.
남편은 그동안 한의사로 대학병원에서 오랜 기간 일해왔고요. 대학 병원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었죠. 그런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들기도 했고, 자녀들도 하나하나 각자의 길을 찾아 나가면서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마침 그 시기에 갖고 있던 약방 건물과 그 안에 놓인 아꼈던 물건과 독특한 자재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제안해 오신 게 저희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 준 거죠. 그래서 이 약방에서 목적을 갖고 열심히 무언가를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Q. 소중한 건물을 되살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처음 시작할 때는 여기저기 손 볼 데가 굉장히 많았고 설렘도 있지만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많아서 용기가 많이 필요했어요. 지금이야 배다리 초입에 카페도 들어서고 이런저런 예술 공간들이 생겨났지만, 당시만 해도 어딘가 적막하고 무서운 느낌 이었거든요. 그래도 안쪽 골목에 들어서면 편안하고 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요. 특히 이십세기약방 건물 앞에 서면 건물만의 단아한 형태와 이렇게, 저렇게 다듬어보고 싶다는 그런 의욕과 설렘이 생기니까 그때부터는 서울과 인천을 열심히 오가기 시작했어요.
Q. 본격적인 공사 단계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면서요?
마음이 맞는 건축가를 찾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다수 맡아서 진행해 온 건축사사무소와 이야기 를 나눴는데, 건물의 노후화가 심하니 철거 후 새로운 건물을 짓자고 권하시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저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일천해서 일단 승낙했는데, 설계 도면이 어떻게 봐도 배다리와 어울리지 않는 거예요. 저는 무엇보다 동네와 어울리는 방향으로 공간을 다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설계를 몇 번이나 수정해 봤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설계비를 드리고 작업을 중단했어요.
Q. 건축주와 원만하게 소통하면서 뜻하는 방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건축사를 만나는 과정도 결코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사실 건축사분들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 주셨죠. 다만 건축물을 보는 관점과 지향하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당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공사 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건물을 이용하고 관리해야 하는 입 장이니까요. 이후에는 오래된 건물을 재생하는 작업을 위주로 하시는 다른 건축사분께도 설계를 요청드렸는데, 기획 방향은 좋았지만 다소 과감한 설계를 제안하셔서 마찬가지로 설계비를 드리고 작업을 매듭짓게 되었어요.
Q. 그렇다면 약방 공사는 직접 진행하신 건가요?
건축사분들과 소통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을 무렵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그게 나름대로 공부가 많이 되었죠. 공간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했는데요. 약방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제 경험과 느낌을 믿고 직접 일관성 있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제가 직접 설계 도면을 들고 시공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제가 생각하는 기획 방향을 디자인적으로 잘 구현해 주실 수 있는 시공사를 만날 수 있었고 시공사 사장님, 그리고 현장 담당 반장님과 소통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해 나갔어요. 물론 공사 기간에는 저도 매일 아침 현장으로 출근했고요. 원래는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일해 주시는 분들과 현장에서 같이 먹던 짜장면은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하더라고요. (웃음)
보존하고, 다듬으며
Q. 지금의 약방 건물을 보면 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신 부분이 정말 많았겠네요.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기로 한 이상 불가피한 부분이죠. 공간에 는 무엇을 어떻게 갖다 놓을 거고, 정원 바닥은 이렇게 뚫어냈으면 좋겠다, 그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챙겼어요. 무엇보다 정원을 만드는 과정에 각별히 신경 썼는데요. 서울 양재동 꽃 시장에서 식물들을 하나하나 고르고 구매한 다음 배다리로 가져와 직접 심었어요. 철마다 한 식물이 꽃을 피우고 나면 그다음에는 다른 친구가 꽃을 피우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는 정원을 생각했고요. 처음에는 돌아서면 일이었는데 이젠 자리가 잡히고 어느덧 익숙해졌네요.
Q. 그러면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요?
착공할 무렵의 공간 트렌드는 노출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거친 질감의 인테리어였어요. 그래서 저도 처음 약방을 고치고자 결심했을 때는 그런 인테리어를 시도해 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옛 건물이기 때문에 구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그런 욕심을 누르고 인테리어는 정갈하게 정돈하자고 결심 했어요. 일단은 한의원으로 활용하는 이상 공간은 정갈한 느낌이 어 울린다 생각했고요. 트렌드는 계속해서 바뀌는데, 건물을 오래오래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둔다면 단정한 방식이 좋겠다고 판단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Q. 오랜 건물을 재생하는 작업은 특히 무엇을 그대로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굉장히 큰 고민이죠. 아무래도 배다리에서 이 건물이 가진 상징성이 있다 보니 공사 펜스를 치는 순간부터 마을 분들의 이목이 집중되 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약방 건물에 있던 우물을 없애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신 분들도 있고, 옥상 정원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죠. 그런데 건물을 재생하고 직접 활용해야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우물을 그대로 두면 무엇보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크고요. 최소한의 주차 공간을 확보를 위해서도 아쉽지만 없앨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오랜 건물일수록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방수가 중요한데, 실사용을 염두에 두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도 옥상정원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어요.
Q. 같은 맥락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지역이나 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다리에서 이런 부분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무엇보다 마음을 열고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다리에 들어오는 젊은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나이 드신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자세를 갖고 정착하거든요. 상식적으로 아무나 이 동네에 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걸 이해해야 해요. 젊은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게 많은 경우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죠. (웃음)
그리고 손맛 좋은 음식점이 몇 개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큰 규모일 필요도 없고요. 소박하게 주간에만 영업해도 요즘은 인스타를 통해 소문도 금방 돌고, 그러다 보면 마을에 훨씬 더 생기가 돌 것 같거든요. 물론 중식당도 좋지만 매일매일 먹기에는 부담스럽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Q. 그럼 반대로 배다리에서 꼭 지켜졌으면 하는 공간이나 문화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지역에 멋진 건축물이 여럿 있었는데 그게 온전히 보존되지 못한 게 제일 안타깝죠. 특히 인근의 세탁소 건물의 타일과 벽돌이 참 아름다웠는데요. 도시재생 사업을 시행하면서 외장재를 지금의 붉은 벽돌로 바꾸었고, 그러다 보니 건물의 매력이 반감되었어요. 또, 지금은 성냥박물관이 된 우체국 역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보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요. 이외에도 건물 얘기를 하자면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 참 많았는데요. 그나마 동성한의원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잘 운영되고 있어서 청산별곡님에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인터뷰 | 김영진
편집 | 강필호
사진 | 장비치, 백승균